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건강한 바를거리, '톤28'을 만나다

이 화장품의 용기는 (입구 부위를 제외한 모든 재질이) 종이로 만들어졌다. 성분 비용 90%, 용기 비용 10%라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용기에는 100% 천연재료만을 사용한 내용물이 담긴다. 합성방부제와 인공향, 인공색소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게다가 화장품을 사기 위해선 가이드를 직접 만나 진단을 받아야 한다. 같은 얼굴이라도 피부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화장품은 28일마다 집으로 직접 배달된다. 우리의 피부는 계절에 따라 매달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거로울 것도 같았다. 게다가 쓸 때마다 용기 뚜껑을 돌려 열어야 하고, 종이로 된 본체 부분을 생각하면 불편할 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 화장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 불편함이 환경과 동물을 살릴 거라고. 어떤 보이지 않는 고집 같은게 느껴지는 브랜드였다. 아주 깐깐하고 퉁명스런 장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나는 이 화장품을 만든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다(조만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좋은 브랜드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런 브랜드를 만나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다. 생존이 가능할까 하는 걱정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다. 이 브랜드를 직접 써보지 않았으므로 어설픈 평가 따위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만으로도 '좋은 브랜드'란 확신이 들었다. 환경 보호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구호로만 외치지 않기 때문이다. 1년 반 이상 용기와 제품을 연구 개발했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화장품은 원재료를 만드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배합하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제품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다름아닌 화장품이다. 하지만 이들은 남들이 다 가는 그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불편을 기꺼이 부담할까? 직접 가이드를 만나 피부 측정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내해가며, 아이들의 짜먹는 음료수 같이 생긴 용기로 인한 불편을 기꺼이 참으려 들까? 바쁜 아침엔 돌려 여는 용기가 귀찮아 원터치 두껑을 선호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과연 이 브랜드는 그런 장벽을 넘어 환경 보호와 최고의 재료라는 고집스런 이 선택을 꿋꿋이 지켜갈 수 있을까?



이 화장품의 이름은 '톤28', 여기서 톤(Toun)이라는 단어의 각 알파벳은 각각 다른 피부의 4가지 부위를 뜻한다. 제품명도 특이하다. 풀무원을 연상시키는 이 네이밍은 화장품을 다름아닌 '바를거리'로 부른다. 그래서 립밤은 '입술 바를거리', 핸드 크림은 '손 바를거리'로 부른다. 토너를 어떻게 네이밍 했는지 보았더니 'Ph 균형제'로 부르고 있다. 주머니 속 송곳처럼 뾰족하게 튀는 이름이다. 무엇 하나 평범하게 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선언처럼 보인다. 프리미엄 제철 원료의 좋은 성분만 고집한다고 한다. 그러고도 월 정기구독 가격은 39,000원(스탠다드 제품 기준) 정도로 책정되어 있었다. 이래서야 남는 것이 있겠나. 괜히 주제 넘은 걱정 하나를 더 갖게 된다. 서비스 이용 방법은 더욱 비범하다. 일단 톤28 홈페이지에서 피부 진단을 받아야 한다. 신청이 완료되면 24시간 내에 바를거리 가이드가 전화를 걸어온다. 약속을 잡아 카페 같은 곳에서 피부 진단을 받는다. 측정 10일 내에 맞춤 화장품이 배달된다. 이후부터는 28일 주기로 제품이 자동 배송된다. 이 과정을 전달하는 것도 살짝 숨이 차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이들의 가치에 동행하고 있을까.



제품과 서비스의 기본적인 가치는 '쓸모'에서 시작된다. 자동차는 이동수단으로, 시계는 시간의 확인이라는 분명한 쓰임새를 충족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 쓸모의 상향 평준화이다. 거의 모든 제품들은 기본적인 품질을 갖는다. 브랜딩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그 다음 부터다. 이 쓸모를 넘어 특별한 '관계'를 가질 때 브랜드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채워줄 때 그 특별한 가치가 가격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 지점이 바로 브랜드가 '브랜딩'되는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수천 원짜리 은이 수십만 원짜리 '티파니'가 된다. 방수천을 재활용한 평범한 가방이 '프라이탁'이 된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지면 넘사벽의 브랜드가 된다. 브랜딩이 마법, 혹은 환상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이 바람과 같이 사라졌을까? 기적같은 행운도 따라주어야 하고, 십 수년 무명 시절을 거치는 인내의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남들 다 가는 쉬운 길을 마다 하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가치를 지켜가야 한다. 다행히도? 이런 브랜드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는 신화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고집스런 브랜드만이 '좋은' 브랜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리다매의 다이소도 그 나름의 브랜딩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지켜야할 '가치'인 셈이다. 가격 대비 쓸모라는 원초적인 기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가벼움?을 결코 견디지 못한다.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세상이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문제는 시장이 이를 알아주냐의 여부이다. 이런 브랜드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좋은 브랜드는 생존할 수 있다. 때로는 성장할 수 있다. 다이소와 롤렉스의 공존은 좋은 브랜드 생태계의 특징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치를 따라 가성비의 샤오미 제품을 사고, 누군가는 심미적인 만족을 위해 애플과 발뮤다와 다이슨의 제품을 사는 것이다. 아마도 '톤28'의 성공은 이런 좋은 브랜드의 생태계의 가능성을 알리는 신호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일급수에만 산다는 산천어처럼 말이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다름아닌 이런 세상이다. 각각의 기호와 개성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들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곳, 그래서 나는 이 브랜드의 발견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의 쓸모와 가치가, 바로 이런 브랜드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 건강한 바를거리, 톤28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화무십일홍, 열흘 붉었던 시절의 카페 골목을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