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화순 수만리에는 들국화 마을이 있다. 이곳은 공장 굴뚝도, 오염된 곳도 하나 없는 청정지역으로 대한민국의 알프스로 불린다. 하지만 이곳 마을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대도시 집중화로 인한 소멸의 위기가 비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고작 20여 가구가 남은 지금, 마을의 주 수익원인 구절초의 판매 경로도 자꾸만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농가 수익이 줄자 구절초 재배도 어려워졌다. 전체 경작지의 1/4도 채우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 마을을 돕기 위해 '브로컬리(Blocally)'라는 회사가 나섰다. 브로컬리는 Brand와 Locally의 합성어이다. 로컬 브랜드의 현대적인 리브랜딩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상생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만들어진 회사다. 이들은 우선 들국화 마을에서 나오는 구절초에 주목했다. 화장품이나 피부과 약이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구절초 달인 물을 수건에 적셔 염증, 습진이 있는 부위에 발라 피부 건강을 지켰다고 한다. 특히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수확한 구절초의 약효가 가장 좋았다고 알려져 이 꽃의 이름도 '구절초'가 되었다.
브로컬리는 약 1년 간 이 구절초의 발효 추출물을 연구했다. 그리고 항염, 진정, 재생에 뛰어난 비건 화장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제품을 일반적인 지역 특산품 브랜드처럼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이름을 짓는 일이었다. 나의 것을 뜻하는 소유격 'OWN'에 온도의 발음 표기 'ONDO'를 합쳤다. 내 피부에 맞는 온도를 의미하는 비건 스킨케어의 새로운 이름이 탄생했다. 원료 조사에 720시간, 농가탐방에 1,440시간, 원료 검증에 2,160시간... 총 4,320시간의 공들 들인 끝에 비건 화장품 owndo°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품을 소개하는 일이었다. 감각적인 네이밍과 감동적인 스토리, 세련된 디자인이 더해진 '온도'는 2,000%의 목표 달성은 물론 만족도 4.9/5점이라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었다. 농약 한 방울 쓰지 않고, 전통방식으로 재배한 뒤 판매하는 이 들국화 마을에 희망을 주는 새로운 브랜드 하나가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9월 9일이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구절초의 이야기처럼.
온도(owndo°)는 예쁜 이름이다. 딤채의 로고를 연상시키고, 식빵으로 유명한 밀도의 네이밍도 함께 떠올리게 한다. 구구절절한 구절초와 들국화 마을의 이야기는 닳고 닳은 마케팅에 질린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젖힌다. 겨우 스무 가구 남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해지고, 피부에 좋다는 구절초의 이야기는 아토피로 고생하는 가족이 있는 이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거기에 제품 개발에 들인 4,320시간이라는 숫자가 왠지 모를 신뢰감을 주어 마음을 굳히게 한다. 무인양품을 떠올리게 하는 용기와 포장은 화룡점정이다. 심지어 충전재조차도 옥수수로 만들어져 물에 녹아버린다니... 친환경을 강조한 제품의 스토리답게 끝까지 매력적이다.
스토리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국내에 시판되는 화장품 브랜드만 무려 만 여개. 이런 치열한 시장에서 선택받는다는 것은 로또를 연상케할 만큼 어렵고 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구절초와 들국화 마을의 스토리, 피부 온도에 주목한 네이밍과 청정함을 강조한 디자인, 펀딩에 만족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맞물리면 이렇게 멋진 하나의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다.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한 스토리다. 후기를 찾아봐도 그렇다. 뻔하고 뻔한 비포어 & 애프터 스토리보다 구절초 이야기가 더 많이 등장한다. 차별화란 이런 것이다. 좋은 브랜드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제품 본연의 기능마저 뛰어나다면, 소비자들이 그 효과에 만족한다면, 이들의 브랜드 스토리는 더욱 더 퍼져나갈 것이다. 그저 소문을 들었을 뿐인 나조차도 혹할만한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