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간만에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고르기 귀찮아 리디북스의 베스트 셀러를 골랐다. 이도우 작가가 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란 책이다. 어딘가 익숙한 제목이다. 요즘 사람들이 뭘 읽고 보는지 궁금해서 고른 책이었다. 알고 보니 동명의 드라마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한동안은 소설을 읽을 짬이 나지 않았었는데.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이 존 윌이엄스가 쓴 '스토너'란 책이었다. 어느 교수의 일생을 그린 소설인데 특별한 사건 없이 평범하게 살다간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그때 깨달았다. 특별히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아도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있구나. 뜻밖의 재미에 완독을 했으나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다.


일단 소설은 잘 읽힌다. 첫 몇 페이지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채 읽을 때가 있다. 술술 읽히지만 지명도 이름도 배경도 낯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물 흐르듯 읽은 후 나중에 다시 읽어보는 편이다. 그러면 마치 안개가 걷히듯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하니까. 이 소설도 그랬다. 앞의 오십여 페이지를 읽고 다시 읽을 때에야 비로소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왔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꼼꼼히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빈틈 많은 나의 책읽기를 욕할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책은 잘 읽히는 책이다. 문장력으로 소문난 작가답게 글 자체만으로 끌리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주인공이 왈칵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의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시킨다. 굳이 지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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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듯이, 소설이 그렇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몇 알게 되면서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수학은 논리의 바다이다. 논리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은 일상에서도, 일에서도 논리적으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 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학의 정석'을 다시 사서 풀어볼 생각을 한동안 진지하게 했었으니까(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하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쏟아놓은 고백록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원고지를 찢어대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설을 한 번이라도 흉내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소설 쓰기가 얼마나 논리적인 작업인지를 말이다.


일단 말과 사건의 앞뒤가 맞아야 한다. 그걸 우리는 개연성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독자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 소설은 시작부터 실패한 셈이 된다. '소설 쓰고 있네'의 그 소설은 우리가 읽는 소설이 아니다. 소설은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글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글이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 나오는 어린 아이 승호의 대화만 해도 그렇다. 아이 치고는 되바라지면서도, 뭔가 뒷통수를 때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현실에서 툭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아이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사는 주인공의 이모 명여만 해도 그렇다. 짧은 등장의 순간에서조차 그녀의 성격과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불편을 끼치기 싫어 직접 먹을 거리를 찾으러 가지만 자매인 수정의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이러면 굳이 찾으러 간 의미가 없잖아'. 깐깐하고 자존심 강한 그녀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감히 말하건대 이런 글은 독방에 홀로 앉아 상상만으로 쓸 수 있는 글이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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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은 또 어떤가. 이 작가는 친구가 친구를 부르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림 학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를 눈 앞에서 직접 본 듯 그려내고 있다. 1인 출판물을 파는 독립 서점에서 몇 년은 일한 사람처럼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겨울에 페인트 칠을 하면 밤새 하얗게 일어나 버리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이쁘게 생긴 고라니가 실제로는 '와악'하고 울부짖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소설가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대충 들은 것을 말로 전하기는 쉬운 법이다. 하지만 그걸 글로 옮기는 전혀 다른 작업이 된다. 내가 직접 보아도 그것을 제대로 옮겨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바로 글로 옮겨 적는 일이다. 그 어려운 작업을 해내는 사람들이 바로 소설가이다. 소설은 문학의 영역에 가둬두기 아까운 지식과 정보와 인간 이해의 집대성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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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소설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소설의 실체를 안 지금은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서성이고 있다. 그러려면 남은 인생의 모두를 쏟아부어도 부족할 것 같아서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처럼 노예를 두고 사는 것도 아니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간간히 소설가의 노고와 위대함을 흠모하며 그들이 쓴 글들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내 삶은 소박하니까. 베스트 셀러라도 괜찮다. 잘 읽히는 글이고 따뜻한 소설이다. 아마 드라마도 그런 이유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해원은 은섭과 결국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만약 그 과정이 순조롭다면 소설이 아니겠지? 그렇다고 극적인 장치를 넣기엔 소설의 전반적인 구조와 문체가 너무 가벼운 듯도 여겨진다. 아마도 시작처럼 끝도 그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그런 결말을 만들 것 같다. 굳이 이야기의 끝을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소설, 나는 이렇게 코로나가 만든 여백을 소설로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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