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에 요즘 힙하다는 분식집이 하나 있습니다. 메뉴가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하진 않아요. 메인이 떡볶이, 김밥, 김치볶음밥, 비빔면 등이고 홍콩 토스트와 돈까스 샌드 같은 색다른 메뉴가 있습니다. 요즘은 명란에그라이스와 마라탕라면이 추가되었군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만한 메뉴입니다. 하지만 다녀온 후기들을 보면 딱히 맛있다는 얘기들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요. 김치볶음밥이 8,800원이고 마라탕 라면은 8,500원이나 합니다. 뭔가 분식을 고급화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가게엔 2,30대 여성 손님들로 넘쳐납니다. 신기한 일 아닌가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 집은 떡볶이를 팔면서도 이렇게 힙한 핫플레이스가 될 수 있었던 걸까요?
그 비밀의 힌트 중 하나는 물병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냉장고 속 델몬트 쥬스병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거 왜 있잖아요. 한 손으로 들기 벅찰만큼 커다란 유리병 말이에요. 보는 것만으로도 80년대 정서가 물씬 풍기는 보리차 담는 병. 그러고보니 메뉴판 하단에는 도산 분식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주는 설명 하나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은 스스로를 이렇게 말하고 있네요. 도산분식은 단순한 밀가루 음식이 아닌, 우리의 추억을 되살린 분식의 새로운 물결이라고 말입니다. 또 다른 힌트는 그릇에서도 찾을 수 있었어요. 요즘도 분식집에 가면 종종 만날 수 있는 녹색과 흰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에나멜 그릇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렇게 비싼 가격을 받으면서도 도산분식은 이 싸구려 그릇에 모든 음식을 담아냅니다.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곳은 분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감성, 요즘 세대들 말로 '갬성'을 파는 곳입니다. 떡볶이가 아니라 추억을 판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면 왜 이 곳이 이렇게 핫한 곳이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요즘 이런 가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프릳츠'라는 카페를 볼까요? 이곳의 메뉴판이나 광고 포스터를 보면 정겹기 그지 없는 옛날 폰트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광고 카피까지 그 옛날의 감성이 풀풀 풍깁니다. 물론 이곳은 커피를 잘 아는 사장님으로 인해 이미 유명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끈 건 커피맛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들 브랜드는 요즘 소비를 좌지우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숨은 욕구를 제대로 읽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맛만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하고 소위 힙한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그런 곳이 있다면 아무리 외진데 있어도, 골목 깊숙히 숨어 있어도 기어이 찾아갑니다. 도산 분식이 잘 나가는 이유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에요. 어느 음식을 만들어도,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맛과 성능은 고만고만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보다 가성비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발품과 손가락 품을 팔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도 괜찮은 제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세상이에요. 중국은 물론 미국의 아마존 사이트까지 뒤지면 못 구할 상품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수입하거나 베낄 수 없는 '추억'과 '감성'을 파는 브랜드들입니다. 도산분식만 해도 그렇습니다. 맛이 특별하다는 얘기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이들은 8,90년 대의 정서와 분위기를 팔고 있습니다. 그래야 인스타에 자랑하는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런 가게들을 '브랜드'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작지만 강한 '스몰 브랜드'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요. 이들의 성공은 우연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도산분식의 창업자는 이미 강남과 가로수길 일대에서 10여 개에 가까운 가게들을 성공시킨 저력 있는 회사입니다. 한 때 유명했던 '배드 파머스'와 요즘도 핫한 '아우어 베이커리'가 바로 이들이 만든 또 다른 브랜드들입니다. 요즘 친구들에게 물어보세요. 아니면 인스타그램에 검색을 해보셔도 좋습니다. 이곳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인증하기 위한 사진들이 여전히 넘쳐나니까 말이에요. 이제 음식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다른 무언가를 얹어서 팔아야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도산 분식은 그 답을 오래된 것들, 그러니까 요즘 말로 레트로 감성에서 찾았습니다. 일종의 추억 팔이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게 요즘 세대들에겐 통한다니까요.
어떻습니까? 한 번쯤 다녀오고 싶으시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만약 당신이 떡볶이를 판다면 어떻게 팔고 싶으십니까? 만일 그럴 계획이라면 이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맛 만으로는 2% 부족하다는 사실을요. 요즘 사람들은 그저 맛있는 것에만 열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그렇다고 오해는 마세요. 맛은 기본입니다. 제품의 품질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세요. 내가 파는 음식은, 제품은 사람들의 어떤 숨은 욕구를 채우고 있는지. 그걸 아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세상입니다. 도산 분식은 바로 그것을 해냈기에 힙해진 것입니다. 머리 아프시다구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요즘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면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걸 저같은 사람은 '브랜딩'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로 다시 찾아올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