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많습니다. 커피맛도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카페를 차립니다. 최근에도 동네에 카페 하나가 새로 생겼습니다. 인테리어부터 남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한 동네에 20년 가까이 살다보니 카페의 흥망이 한 눈에 보이거든요. 지금껏 수 년 이상 살아남은 카페는 단 하나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알고보니 건물주였거든요. 그러니 제 일도 아니면서 걱정이 앞섭니다. 과연 저 카페는 얼마나 견뎌낼까 하고요. 그래서 중요해진 것이 바로 '컨셉'입니다. 맛과 가격으로 경쟁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레 컨셉을 소비합니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 내가 이만큼 트렌디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도구로써 카페를 방문합니다. 그래서 좋은 건 재미있는 카페가 많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방문했던 곳이 바로 그런 카페 중 하나였습니다.
요즘 핫한 성수동에서 브랜딩 워크샵을 진행 중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성수동 골목 깊숙한 곳에, 그것도 반지하에 위치한 카페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빌로우(bellow)'입니다. 네이밍부터 특이하지 않나요? 그 와중에도 사진 찍을 포토존은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었습니다. 다분히 의도적입니다. 계단을 내려갑니다. 생뚱 맞은 커텐이 있습니다. 커텐을 걷고 들어가면 주문을 받는 매장이 보입니다. 여기서 한 번 당황합니다. 앉을 자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조그만 보석상을 방문한 그런 기분이 듭니다. 커피 주문까지는 어떻게 마쳤습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버튼을 누르고 마법처럼 숨어 있던 문 하나가 스스르 하고 열립니다. 그제서야 숨겨왔던 카페 공간이 보입니다. 재미나네요. 처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 때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마치 비밀의 카페를 방문한 듯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니까요.
커피도 특별합니다. 시그니처 커피의 경우는 확실이 전에 맛보던 커피와는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보통 커피잔의 절반 크기에 불과한 투명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 역시 범상치 않습니다. 바닐라, 시나몬, 비엔나, 피넛버터, 흑임까지... 크림에 담긴 각각의 맛이 선명해서 양에 대한 아쉬움이 상쇄되는 기분입니다. 사실 공간 자체는 특별하지 않아요. 어느 학교의 의자를 옮겨온 듯한 책상과 의자는 편안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반지하의 공간에 숨은 카페라는 생각에 평범하지 않은 것 자체로도 만족하게 됩니다. 오래 앉아 있을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공간과 특별한 경험만으로두 충분히 만족스럽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한 번은 데려가고 싶은 그런 카페입니다. 놀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커피 한 잔 이상의 값어치는 할 것 같으니까요.
컨셉의 힘은 무섭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커피의 맛 뿐 만 아니라 공간, 그리고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경험을 소비하기 원하니까요. 그런데 그 방법이 크고 화려한 공간 만은 아니라는 것을 카페 빌로우에서 배웁니다. 힙한 만큼 임대료도 높은 곳이 바로 이 동네입니다. 수년 전 이곳에서 일할 때 만났던 메밀국숫집의 사장님은 이전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가겟세가 두 배나 올랐다고 하네요. 사실 그 정도면 다른 힙한 거리에 비해서는 적게 오른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카페 빌로우는 반지하에 있습니다. 월세에 대한 부담은 확실히 적을 거에요. 그런데 이 카페는 반지하가 가진 공간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컨셉의 힘입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놓은 발상의 전환이 이렇게나 힘이 셉니다. 이곳이 2호점이라고 하니 1호점이 궁금해집니다. 다분히 의도적인 컨셉이란 사실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컨셉이 밥을 먹여주냐고요? 네 실제로 밥을 '많이' 먹여줍니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다음에야 결코 찾아오기 힘든 위치이고 공간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귀신처럼 이런 곳을 잘 찾아냅니다. 모두 인스타그램 덕분입니다. 이곳 카페의 시그니처 커피에 쿠키를 올려 찍는 사진은 이미 인스타에서 유명한 사진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컨셉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증법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러니 카페 하나를 하더라도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카페나 한 번 해볼까 하는 자세로는 도저히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본이 작아도, 특별한 메뉴가 없다 해도, 생각지 못했던 컨셉 하나가 힙한 카페 하나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요즘이니까요. 요즘의 소비자들은 그런 카페를 언제나 강렬하게 원하고 있으니까요. 어떤가요? 이래도 카페를 해보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당신이 만들고 싶은 카페의 컨셉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갖고 계시다면, 가능할 겁니다. 그곳이 비록 골목 깊숙한 곳의 반지하라도 해도 말이니다. 카페 빌로우가 그랬던 것 처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