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과 자각은 한 끗 차이다. 싸이나 BTS, 봉준호 감독이 가져다준 기쁨을 우리 중 누군가는 국뽕이라 불렀다. 과하다 싶은 자기 만족에 대한 경계심이 더해진 묘한 단어다. 자랑스럽긴 하지만, 또 마냥 그래서만은 안될 것 같은 주춤하는 모양새를 담은 이상한 단어다. 일종의 자기검열이랄까. 하긴 그럴 만도 하다. 2002년 월드컵 같은 영광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싸이의 인기는 한 번의 요란스런 축제로 끝나버린 듯 했으니까. 김연아 같은 피겨 선수는 다시 나올 법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드라마 킹덤, 그 두 번째 시즌을 보면서 나는 국뽕과는 조금 다른 '자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바로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새삼스런 깨달음이다. 화면 속 흩날리는 도포 자락은 아름다웠다. 달 빛 아래 기왓장을 밟고 달리는 장면은 극 속 상황과는 달리 운치 있었고, 섬세한 칼 사위와 힘 있게 솟아오르는 화살들 만큼이나 이야기의 전개는 빠르고 경쾌하기 그지 없었다. 감히 말하건대 '왕좌의 게임' 그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우리 이야기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드라마 킹덤 시즌2는 국뽕이 아닌 '자각'하는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괜한 겸손은 버려도 좋을 이야기다. 우리도 이제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당당하게 내놓을만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킹덤은 좀비물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물리도록 많이 본 장르다. 하지만 킹덤은 새롭다. 단지 배경이 달라서만은 아니다. 좀비에 대한 설정도 감탄할 만큼 디테일하고, 그들 주위를 둘러싼 정치와 권력과 민초들의 이야기가 숨막힐 정도로 촘촘하다. 분명 하드코어물인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전형적인 사극의 구성을 따르지도 않았고, 기존의 한국 드라마가 만들어낸 신파적인 구성에서도 한참을 비껴서 있다. 킹덤은 그냥 킹덤이다. 그 흔한 좀비물도 아니면 사극물도 아니다.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또 하나의 몰랐던 세계다. 그 세계가 조선이라는 사실이, 바로 내 나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다. 재미로도 벅찬데 비주얼마저 엣지 넘친다. 6화에 걸친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내리 보았다. 좀비물과 사극, 역사물의 경계 어딘가에 새롭게 만들어진 세계에 흠뻑 빠져 들었다. 본 사람은 안다. 이것이 결코 과장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국뽕이란 애매한 말로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이 드라마는 전 세계의 누가 보아도 빠져들만큼 멋진 이야기니까 말이다. 다름 아닌 그 사실을 자각하자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주눅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위기 가운데서 우리들은 아주 '잘하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동경해마지 않던 나라들이 헤매고 있다. 눈 질끈 감고 모른척 하는 나라들을 보며 되려 우리들이 놀라고 있다. 우리는 다른 어떤 나라도 가보지 않은 길을 지금 걷고 있는 중이다. 최고의 기술로, 최고의 노하우로, 최고의 스피드로 코로나 19라는 역병을 온 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정치적 편견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지. 잘 하는 건 나랏님도 아니고 편 가른 정치꾼도 아니다. 그냥 보통의 의사이고 공무원이고 시민들이다. 킹덤 시즌2에서 왕 위에 오른 자는 왕족의 핏줄을 따른 자가 아니었다. 그 시기와 상황이 불러낸 가장 적절한 그 '누구'였다. 코로나를 이겨내고 전세계의 칭찬을 받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이다. 이 사실은 국뽕이 아니라 '자각'해도 좋을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잘할 리 없다는 손톱의 때만도 못한 어설픈 겸손은 던져 버리자. 잘하는 것은 잘 한다고, 모자란 것은 모자란다고 말하자. 국뽕을 넘어 우리를 '자각'하자. 우리는 똑똑하고 용감하고 아름다운 민족이다. 이제는 그 사실을 우리 자신도 깨달을만한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