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시작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토요일 밤 11시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크게 끌리진 않았습니다. 시리즈물은 한 번 시작하기 부담스럽기도 하구요. 그런데 한 번 시작한 이 드라마 멈출 수가 없더군요. 결국 새벽 3시에 겨우 정주행을 멈추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 덕분이 오늘의 시작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후회는 조금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도 스스로 위안을 해봅니다. 재미와 감동이 마치 단짠단짠의 공식을 지킨 맛집 메뉴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런 드라마였으니까요.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드라마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물론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감독과 작가의 작품이지만, 단순히 전작의 변주만으로 이런 인기를 끌어낸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사실 그런 이유로 이 드라마를 그동안 보지 않은 이유도 큽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더군요. 각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세세하게 빚어진만큼 너무나 다르고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부와 수녀를 형 누나로 둔 '부처' 유연석과 장겨울 선생의 러브 스토리가장 기대되더군요. 하지만 드라마의 등장인물을 소개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니 각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나 스토리 전개는 조금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고민한 이 드라마의 매력은 그것만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캐릭터와 스토리가 가진 '의외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조정석이 연기하는 익준이라는 인물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첫 등장부터가 충격적입니다. 다스베이다 투구를 쓰고 나타난 그가 간이식 수술에 바로 들어가는 장면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누가 봐도 천사표인 유연석은 알고 보니 병원 원장이 될 수도 있었던 사실상 재벌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까칠한 전경호는 뜻밖에 따뜻한 마음과 연정을 숨긴 캐릭터이고, 완벽한 의사이자 철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홍일점 채송화 선생님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판타지한 의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런 완벽한 캐릭터들은 저마다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매력이 배가 됩니다. 채송화 선생은 남자 친구의 외도?를 목격하고 익준 선생은 오랫 동안의 별거 아닌 별거 끝에 이혼을 요구받습니다. 착하기만한 한 줄 알았던 유연석은 해마다 신부인 형을 붙잡고 술주정을 부리네요. 각 캐릭터들이 가진 이 '뜻밖의' 모습들은 다른 캐릭터들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집니다.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인물들이 가진 '의외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거기서 멈췄다면 여타의 로맨틱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요? 이 드라마가 가진 두 번째 매력은 그 '구체성'에 있습니다. 각 회마다 등장하는 주요한 조연들은 연기력 끝판왕의 모습을 회마다 반복해 보여줍니다. 무대 병원인 만큼 극적인 스토리들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 역할을 맡기 위해 절절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눈물 콧물 떨어뜨리는 뜨거운 연기들을 보여줍니다. 불과 2부 전에 배를 잡고 웃었는데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오직 그 연기력 때문에 섭외된 인물들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13시간의 수술을 마친 후 바로 그 다음 수술에 들어갈 만큼 현실감 있는 '의사생활'을 보여줍니다. 연애하느라 진료는 뒷전인 여타의 의학 드라마보다 훨씬 더 리얼한 모습들을 촘촘히 박아놓았습니다. 물론 진짜 의사들이 보기에는 성에 차지 않겠지만 저 같은 일반인들에겐 충분히 현실적인 모습들입니다. 그 구체성이 이 드라마가 가진 의외성과 대비되면서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이 드라마를 보고 단짠단짠의 마력을 가진 음식을 떠올렸던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감독과 작가의 전작들을 떠올리면 그 전개를 조금은 예상해볼 수 있는 조금은 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끔씩 등장하는 과거 장면을 통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쌓아올렸던 복고와 추억의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그렇고, 간간히 등장하는 연애 전선의 전개는 마치 추리소설이 주는 호기심과 궁금함의 본능을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전개를 가능케 하는 인물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는 알면서도 보게 되는 묘한 매력으로 이어집니다.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게 보여주는 이 드라마의 매력은 제가 앞서 말씀드린 린 의외성과 구체성에서 조금은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뭐 굳이 그런 분석 없이도 충분히 그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드라마임엔 분명한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떤 인물에 끌리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이 드라마를 제대로 소비?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레지던트 장겨울 선생이 가장 끌리네요. 과연 장겨울 선생의 유연석을 향한 직진은 성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시작된 지루한 일상에 조그마한 청량제를 만난 듯 해서 반가운 작품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을지도 정말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