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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나이퍼

"I'm ready to come home"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았다.
실화에 기초에 이 영화로 미국에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는 정도만 알고 보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가 미국의 애국주의를 표방한 영화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다만 '전설적인 스나이퍼'로 추앙받는 크리스 카일이라는 인물이
실제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따뜻한 시선만이 도드라져 보였다.


주인공은 단순하다.
그래서 그는 입대 전 카우보이를 꿈꾸었고,
그래서 주말이면 맥주를 진탕 마시는 삶에 자족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 단순함이
자신의 조국을 향해 총부리와 비행기를 날리는
(주인공은 9.11을 TV로 접하고 입대를 결심한다.)
중동의 사악한 존재들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것도 아주 쉽다.
그리고 전장에선 오로지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일념으로
아이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미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미군을 향해 던지라고 자신의 아이에게 수류탄을 쥐어주던 그 엄마,
크리스 카일이 악마라고 불렀던 그 엄마 역시
자신의 남편이나 가족을 죽음으로 몰았던 미군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그랬을 것이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온다.
서로가 서로를 원망과 증오와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는 그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아빠이자 엄마이자 아들이라는 사실...
전쟁은 그 자체로 충분한 비극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없이 이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I'm ready to come home"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주인공이
그 순간 위성전화로 자신의 부인에게 되뇌이는 말이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마저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자신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기다려주는 그 가족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용하고 묵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난 그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돕는 두 번째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쉽게도 비극으로 끝난다.
미군 역사상 최고의 전설적인 스나이퍼가
자신이 도우려 했던 바로 그 사람에게 총을 맞고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이런 그의 마지막 장례행렬을
수많은 추모 인파들을 카메라가 따라가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어떤 미국인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금 전쟁터로 향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반전의 목소리를 다시 높일 것이다.


이런 비극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전쟁이 계속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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