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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브리즈는 왜 주부들에게 외면받았나?

1938년 네슬레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커피 '네스카페'를 시장에 내놓습니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마실 수 있는 '편리함'을 강조하며 소비자들을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블라인트 테스트를 통해 맛의 차이가 별로 없음을 이미 확인했던 네슬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전문가를 통해 그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원인이 다름아닌 주부들의 '죄책감'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장바구니에 인스턴트 커피를 담은 주부들을 보고 '게으르고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네슬레는 마케팅 포인트를 편리함에서 '활동적이고 계획성 있는 세심한 여자'로 바꾸어 광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네슬레는 전세계 1위의 독보적인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페브리즈가 우리나라에 첫 선을 보이는 과정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초창기 폭발적인 반응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주부들이 페브리즈를 기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나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냄새를 덮어버리는 게으른 주부로 보일까봐 구매를 꺼렸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회사는 제대로 청소를 한 후 완벽한 마무리를 원하는 주부들이 쓰는 제품으로 광고 메시지를 전면적으로 수정합니다. 특급 호텔의 룸 서비스도 페브리즈를 사용한다는 내용의 광고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페브리즈의 매출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주부들의 숨은 '죄책감'을 제대로 읽고 그에 맞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브랜딩이란 각각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가치'를 시장과 세상에 전달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가치란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숨은 욕구를 채워주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네슬레나 페브리즈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 제품들이 가진 '편리함'이나 '유용함'은 너무 분명합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제품의 장점을 알면서도 선뜻 지갑을 열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훌륭한 주부'로 인식되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제품을 개발한 사람들은 이러한 주부들의 마음 속에 있던 '죄책감'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치 하늘의 달을 따달라는 공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어느 왕국의 신하들의 심정도 꼭 그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주를 이해하고 있던 광대의 질문은 달랐습니다. 결국 공주가 원하던 달이 손톱끝만큼 작은 크기임을 알고 그에 맞는 달을 만들어 공주의 목에 걸어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마케터와 브랜더의 모습은 동화 속 신하가 아닌 광대의 역할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짜 달이 아니라 공주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모양과 크기의 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려면 공주의 눈과 마음으로 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네슬카페와 페브리즈가 제품이 주는 편리함 뒤에 숨은 주부들의 죄책감까지 읽어낸 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만들고 있는 제품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사람들의 어떤 숨은 욕구나 가치를 채워주고 있나요? 어쩌면 이런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브랜딩을 시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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