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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마이클 조던의 전기를 쓴다면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마이클 조던은 알 것이다. 시카고 불스의 붉은색 유니폼을 보면 만화 슬램덩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만화보다 더 실제 같은, 한 마리 날으는 새 같은 마이클 조던은 스포츠 영웅 그 이상이었다. 그런 그의 전성기를 그린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이름하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막연하게만 알던 그의 플레이와 삶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마음을 사로 잡는다. 순식간에 두 편의 에피소드를 정주행한다. 대개의 넷플릭스 작품들은 한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한꺼번에 업데이트되건만 이 다큐멘터리는 그렇지 않다. 매주 한 편씩 업데이트된다고 한다. 감질나서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오늘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적어보고 싶었다. 거짓말 같은 그의 NBA 정복기, 만화 같았던 그의 삶을 이 다큐는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고 있을까. 그런 방식을 어쩌면 나만의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일단 이 다큐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처럼 시간의 순서를 따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1997년, 다섯 번째 우승을 마친 절정의 순간이 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가장 영광스러웠던 이 순간은 또한 가장 위기의 순간이기도 했다. 시카고 불스의 단장이 팀의 리빌딩(재정비)을 시작한 해였기 때문이다. 장기 계약에 묶인 스코티 피펜이 수술을 이유로 더 이상 마이클 조던과 합을 맞추지 않는다.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시카고 불스에는 어울리지 않는 연전 연패가 계속된다. 찰떡궁합의 동료가 사라지자 마이클 조던의 리더십도 함께 달라진다. 동료에 대한 비난과 원망을 서슴치 않는다. 한 경기에 무려 63점을 쏟아붓는 원맨 플레이가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은 패배한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지만 나라를 구할 수 없는 삼국지의 어느 장면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과연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는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그렇게 절정을 치닫던 이야기는 해를 거슬러 올라 입단 초기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큰 위기에서 시작점으로, 1997년의 절정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의 주변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렇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글쓰기의 초보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일기처럼 쓸 때가 많다. 시간의 순서대로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글을 써 본 사람들이라면 그 순서를 다르게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흥미롭게 이야기를 읽어갈지를 가장 먼저 고민한다. 다큐 '라스트 댄스'는 마이클 조던 공구 인생의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던 1997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과연 온갖 어려움을 딛고 여섯 번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까? 결과를 알면서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스토리가 시간과 사람을 오가며 이어진다. 나는 이 현란한 '스토리 텔링' 방식이 내용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이건 글쓰기에도 바로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한 기업이나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어느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을까? 분명한 것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나열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의 이야기도 평범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그 대신 일생 일대의 위기나 가장 큰 성공의 절정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야기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그 '낙차'의 힘을 이용해 글을 쓴다면 잘 읽히는 멋진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재료라면 글쓰기는 글감이다. 좋은 글감이 좋은 글을 만든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요리이든 글쓰기든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다. 제때 물을 끓이고, 재료를 손질하고, 타이밍에 맞춰 굽기나 삶기를 시작하는 것이 요리의 맛을 좌우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떤 내용을 쓰느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어떤 순서로 글을 쓰는가다. 이건 다큐나 소설 같이 거창한 글쓰기가 아니어도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써보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면 그 다음이 궁금해질지에 대한 감을 익혀야 한다. 한 단락에서 그 다음 단락으로 이어가는 스킬이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날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보라. 만일 직장에서의 어려움이라면 상사에게 된통 혼난 장면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라. 그리고 그 다음 단락엔 입사 초기에 어떤 마음으로 이 회사에 들어왔는지를 추억해 보라. 마지막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그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탈출했는지에 대해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마무리하라. 마치 한 편의 다큐 같은 글이 탄생할 것이다. 일기와는 또 다르게 읽힐 것이다. 넷플릭스에는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이 올라와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재미를 넘어 그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훔치는 것이다. 다큐 '더 라스트 댄스'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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