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보니 이상하다. 우리 와이프라니. 그런데 '나의 와이프'는 더 이상하다. 아내란 말도 느낌이 살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우리 와이프라고 말하기로 한다.
20년 가까이 함께 살았다. 멋진 아들과 예쁜 딸을 두었다.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분당의 옥탑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고생을 많이 시켰다. 둘 다 물려받은 재산은 없었다. 회사를 쉰 시간은 오래지 않지만 그때마다 빚이 늘었다.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7년 일하는 동안 단 한 번 10% 월급 인상이 있었다.
와이프는 아이들 돌봄 일을 했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맡아 학원의 등하교를 돕고 간식을 챙겼다. 집주인이 하다 못해 물값이라도 받아야겠다며 월세를 올려 받았다. 언제나 있는 자들이 더하는 법인가?
코로나가 찾아왔다. 돌봄이 거짓말처럼 끊겼다. 와이프는 두 번 고민하지 않았다. 아이들 학원비는 벌어야겠다고 했다. 물류 창고에 가서 새벽 1시까지 일했다. 지금은 요양원에서 주방 보조를 한다.
나는 버는 만큼 쓰자는 주의다. 와이프는 아이들이 배우는 것엔 때가 있다고 믿는다. 여간해선 싸우지 않지만 돈에 관한 가치관은 평행선이다. 그래서 와이프는 내게 손 벌리는 일을 매우 싫어한다.
내가 직장을 그만 뒀을 때의 일이다. 나이 마흔 중반에 새로 직장을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와이프가 편의점 알바를 제안했다. 나는 그 날로 집을 나가 일을 물어왔다. 프리랜서이자 1인 기업의 시작이었다.
운 좋게도 수입이 늘었다. 최소 두 배, 많게는 이전 월급의 서너 배를 번다. 재밌는 것은 수입이 느는 이상으로 지출이 는다는 것이다. 신기했다. 이것도 무슨 법칙이 있는 것인가?
와이프가 손이 아프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항상 알바몬을 뒤진다. 한 때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다. 퇴사 후 1년 반이 지나도 복귀 요청이 올 정도의 사람이었다.
이건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이 나라만 이렇게 여자들의 경력 단절이 심각한 것인가. 열심히 사는데도 항상 뭔가에 쫓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남들은 집도 사고 땅도 사던데.
아픈 손 때문에 쩔쩔 매는 와이프에게 호기롭게 '관두라' 말해본다. 와이프가 눈을 흘긴다. 얼마나 구박하려고 그런 말 하냐는 눈치다. 이럴 때마다 복권을 긁고 싶어진다. 그런 복이랑 너무나 거리가 먼 나인 줄 알면서도.
돈에 관한 한 가치관은 다르지만 와이프를 존중한다. 그 와중에도 알고 지내는 보육원 아이들 알바 자리까지 챙기는 사람이니까. 방법은 하나다. 내가 더 많이 일하고 버는 수밖에 없다.
돈 복은 없는데 와이프 복은 있는 모양이다. 말을 내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과 산다는 것만큼 큰 복이 있을까 싶다. 오늘도 우리 와이프는 말릴 길이 없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 와이프가 꿈꾸었던 놀고 먹는 삶을 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