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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눈 뜰 때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을 빛을 찍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설핏 들은 적이 있다. 사진의 원리가 빛을 담아내는 과정이고 보면 참 맞는 말 같다. 오후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골목길의 정취를 만드는 것 역시 빛이 아니던가.


조명 회사 대표님 덕에 그 빛에 눈을 떴다. 이번엔 실내 조명이다. 요즘은 카페나 힙한 플레이스를 가면 조명부터 살핀다. 전에는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던 영역이다. 이제는 카페를 가면 고개를 들어 천정을 본다.


조명도 역사가 있고 트렌드가 있다. 내가 자주 만나는 '코램프'의 전신은 '창성조명'이다. 40여 년 전부터 샹들리에를 비롯한 조명 제품을 만들어왔다. 직접 디자인하고 제품을 제작하는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다.


조명은 공간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은 이 조명을 다룰 줄 아는 공간들이었다.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고 필요에 따라 적절한 빛을 만들어내는 일, 그게 예술이 아니고 또 뭐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 동안 어떤 공간을 떠올릴 때 빛을 생각하지 못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지 못했다. 그저 밝기만 하면 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조명에 눈을 뜨고 나서 공간을 채우는 빛의 역할에 눈을 떴다. 신기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는 자연 조명이 컨셉이다. 좁은 공간이지만 2층에 오르면 오후의 햇살을 마음껏 받을 수 있다. 조명이 빛이라면 이만한 생기를 가진 조명이 또 있을까 싶다.


반면 양재역 프릳츠의 지하 조명은 어둡기 그지 없다.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한 지하 공간은 꼭 필요한 조명만 공간을 채우고 있다. 마치 동굴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나는 이곳을 찾는다.


성장이란 앎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 앎이 경험에서 온다면 더욱 값진 것이다. 그것이 실용적인 깨달음이라면 더욱 값지다. 더 나은 '안목'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다워지는 것.


나는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껏 고개를 들어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떤 곳을 가도 공간을 채우는 빛을 본다. 그것이 그 공간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익히 경험한 탓이다.


보지 않던 곳을 보자. 가지 않던 곳을 가자. 날마다 조그맣게라도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보자. 그리게 내게 어울리는 공간을 찾고 내게 어울리는 일을 찾아내자. 그것이 축적되면 나는 나다워진다. 세상에 그만한 축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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