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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칠성 사이다가 '향수'를 만든다면?

칠성 사이다가 어느새 70주년을 맞이했네요. 아마도 이를 기념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칠성 사이다는 그 중 하나로 굿즈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같이 할 대상으로 '29CM'를 선택했죠. 개인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브랜드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콘텐츠과 비주얼을 선보일 수 있는 회사, 그것도 온라인 커머스를 하는 회사가 많지는 않거든요. '뉴트로'라는 컨셉으로 칠성 사이다를 재해석하기 위해 이들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요? 그 답은 뜻 밖에도 '향수'였습니다. 사이다 회사가 만든 향수라니? 놀랍지 않나요. 그런데 29CM와 협업을 했다니 믿음이 갑니다. 이 향수를 구매한 사람들의 평을 잠깐 살펴봤습니다. 상큼한 레몬라임향, 진짜 사이다향, 귀엽다, 고급스럽다, 장식용으로 딱이다... 뭐 이 정도면 담당자들도 한 시름 놓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하나 사고 싶네요. 칠성 사이다가 이런 것도 하네, 70살이나 먹은 회사가 용기 있네 하는 흐뭇한 생각도 들구요.


하지만 정작 제 관심은 칠성 사이다 보다는 29CM 쪽에 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지켜봐온 회사거든요. 물건을 팔지 않고 콘텐츠를 파는 회사, 그 컨셉 부터가 신선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의 브랜드 슬로건은 'Guide to Better Choice(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가이드)'입니다. 어떤 회사인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구죠. 이들은 서비스의 중심을 매출 증대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로 스스로를 정의 내립니다. 그래서 그 정보를 담고 있는 콘텐츠 제작에 온 힘을 기울이죠. 보통의 커머스 기업들이 매출 증대와 성장에 사활을 거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상품을 큐레이션해 진정한 가치를 설명해주고 선택은 소비자에게 맡기는 것, 이 쿨내 나는 회사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지금 많이 팔리는' 혹은 '팔릴 게 확실한' 상품 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면 좋은 상품도 판매하고 소개하는 겁니다. 왠지 익숙한 표현들이네요. 그렇습니다. 저도 지금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거든요. :)



29CM는 달력도 만들었어요. 물론 일반적인 달력이 아닙니다. 엄선한 공연과 전시 일정을 알려주는 이른바 '컬쳐 캘린더'죠. 달력을 클릭하면 그 날의 가볼만한 문화행사가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서비스 4개월 만에 1만 명의 독자를 확보했다죠? 단순히 유행하는 것만을 다루지 않고 재미와 기획 의도, 완성도 등을 따져 진짜 추천할 만한 행사만 소개한다고 합니다. 너무 상업적이거나 어려운 것들은 제외하는 방식으로요. '온라인 편집샵'이라는 이들의 정체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서비스입니다. 커머스 기업이 제품 판매를 넘어 어떻게 문화 큐레이터로 차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같아요. 왜 그런 친구 있잖아요. 사고 싶은 제품이나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꼭 물어보고 싶은 그런 친구 말입니다. 자신도 그런 추천을 즐기고 있는 듯한, 29CM는 바로 그런 스마트하고 쿨한 친구를 연상시키는 서비스입니다.



29CM는 컨셉이 분명한 브랜드입니다. 그들의 슬로건만 봐도, 온라인 편집샵이라는 정체성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죠.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에 있습니다. 29CM를 한 번이라도 가 본 분은 아마  이런 질문을 던지셨을 거에요. 도대체 이런 카피는 누가 쓰는거지? 그 답이 궁금하시면 '문장수집생활'이라는 책을 사보시면 됩니다. 거기에 답이 있거든요. 이 회사의 카피 라이터는 취미가 소설 읽기 입니다. 소설 속에서 제품을 소개할 만한 카피 문장을 쏙쏙 뽑아내는게 특기거든요. 그게 얼마나 신선하고 기발하면 책까지 나왔겠습니까. 회사의 컨셉이 선명하니까 일하는 방식도 다르죠? 칠성 사이다로 향수를 만들고, 소설 속 문장으로 카피를 쓰고, 다른 회사는 쳐다도 보지 않을 문화 달력을 만듭니다. 이 회사는 스스로를 '착하고 엉뚱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일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결과물은 착하면서도 엉뚱해보입니다. 그래서 '유니크unique'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좋아하죠. 자기만의 색깔이 있으니까요.



29CM가 정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정 반대편에 있는 무신사는 무신사답게 일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해야 합니다. '착하고 엉뚱한' 회사가 될지, '독하고 욕심많은' 회사가 될지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걸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부릅니다. 쉬운 말로 '자기답다'고 말하죠. 사람들이 좋아하고 오래 가는 브랜드들은 이런 회사들입니다. 분명한 아이덴티티는 선명한 컨셉으로 이어집니다. 29CM는 '더 나은 선택'을 돕는 콘텐츠 중심의 '온라인 편집샵'입니다. 뭔가 일맥상통하는 메시지가 느껴지지 않나요? 착하고 엉뚱해보이지만 해박한 브랜드 지식을 가진 20대 후반의 훈남의 이미지 말입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이 친구는 친구들에게 다양한 문화 행사 알려주기를 즐기며 사이다 브랜드의 향수를 뿌리며 즐거워합니다. 뭔가 앞 뒤가 맞는 기분이 들죠? 이런 식으로 이 회사는 한 해 매출 1,000억 넘기는 진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어떤 사람'이 될지부터 먼저 정하세요. 마케팅 전략은 그 다음에 세워도 늦지 않습니다. 컨셉만 분명하다면 그 작업은 한결 쉬워질테니까요. 29CM가, 무신사가, 이들과 협업해온 수 많은 브랜드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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