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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도 오랫동안, 키티버니포니

한 5,6년 쯤 되었을까요? 제가 만난 키티버니포니의 김진진 대표는 단아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용하고 다소곳한 목소리로 자신의 브랜드를 설명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곤 오랫동안 잊고 있었네요. 맥심이 이 브랜드의 패턴으로 콜라보를 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한때 카카오 프렌즈의 캐릭터들이 있던 자리를 키티버니포니가 채우고 있는 모습에 괜히 제가 뿌듯해졌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찾아보니 그새 직원 수도 많이 늘었더군요. 여전히 작은 브랜드지만 진정성 있는 브랜드입니다. 어렵게 디자인을 해도 금방 다른 업체들이 카피해서 속상해하던 김 대표의 모습을 기사 속 사진에서 보았습니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키티버니포니는 한국의 마리메꼬로 불리며 패브릭 기반의 리빙 브랜드로 완전히 자리잡은 상태입니다. 요즘 핫한 '어니언' 카페를 디자인한 '패브리커'의 두 대표도 기사를 통해 만났습니다. 목욕탕을 개조한 젠틀몬스터의 매장도 이들의 작품이더군요. 두 브랜드의 작은 성공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저지만, 그래도 이들의 가능성을 보고 인터뷰했던 기억 만큼은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키티버니포니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이 브랜드의 전신은 1994년 아버지가 설립한 '장미산업사'라는 자수 공장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 한계를 느낀 아버지가 당시 디자인 대학원에서 색채 공부를 하던 딸에게 브랜드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2008년, 동물 무늬가 프린트 된 쿠션 5가지와 아버지 공장에서 만들어진 오리지널 자수 패턴 5가지로 '키티버니포니'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걸까요? 때마침 유행하던 북유럽 디자인의 트렌드에 올라탄 이 브랜드는, 오리지널 디자인 원단이라는 원동력을 바탕으로 조금씩 기반을 다져가기 시작합니다. 좋은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리는 신중한 성장은 총 3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탄탄한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무리해서 규모를 키우기 보다는 오래도록 브랜드와 사업을 유지하고 싶다는 김 대표의 바람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는 지금도 유통사를 통하지 않고 오직 백화점과 직영 매장, 온라인 몰을 통해서만 제품을 판매합니다.



키티버니포니는 오프라인보다 SNS에서 더 유명합니다. 국내에선 아직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기 전이던 2014년 7월, 일찌감치 계정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팔로워만 9만 명을 바라봅니다. 든든한 마니아 층이 이 브랜드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은 김 대표가 아닌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는게 흥미롭습니다.인스타그램이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절, '요즘 젊은 애들은 다 이거 한다던데'라며 김 대표를 등 떠밀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키티버니포니의 인스타그램은 이제 가장 큰 소통 창구이자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협업을 했던 국내외 디자이너와 작가들 역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자체 디자인과 생산, 온라인 유통은 이 브랜드가 유통 마진을 줄이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사 온라인몰에서 매출의 70%가 나온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키티버니포니는 지난 12년 간 150여 종의 원단 패턴을 개발했습니다. 그 원단으로 현재 50여 종의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는 중입니다.



키티버니포니의 디자인 정체성은 매우 선명합니다. 생동감 있는 컬러, 대담하고 과감한 패턴, 실용적인 물건을 만든다는 원칙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패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키티버니의 로고를 바탕으로 만든 패턴이 그것입니다. 2013년, 이 원단으로 만들어진 가방과 파우치는 무려 5만 개나 팔려 나갔습니다. 더 의미있는 건 한국에서 디자인한 오리지널 패턴 원단으로 만든 브랜드가 리빙 브랜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가능성을 알아본 아모레퍼시픽, 맥심, 파리바게뜨 같은 대형 브랜드들이 앞다두어 협업을 제안해오고 있습니다. 키티버니포니의 독창적인 브랜드 정체성을 인정했다는 의미겠지요? 키티버니포니의 슬로건은 'Life in patterns'입니다.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패턴과 디자인을 대중에 제안하고자 하는 그들의 숨은 욕심이 슬며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조용히 성장하는 브랜드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렇다고 폭발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브랜드들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선명한 자기 색깔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카피하고 싶은 유니크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면, 이런 브랜드는 아마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키티버니포니의 정갈하고 포근한 쿠션이 그리운 주말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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