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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진짜 '임차인'입니다

나는 요즘 집을 오갈 때 녹음기를 들고 다닌다. CC TV를 구매하려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며 관두었다. 며칠 전 집 주인이 아침 댓바람부터 들어와 삿대질을 하며 욕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내일 모래면 반 백의 나이인데,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욕을 들었다. *가지가 없다, *새끼는 기본이고 집을 더럽게 썼다며 이게 개집이지 사람 사는 집이냐고 했다. 집 관리를 못했으니 모두 변상 조치하겠다고 했다. '어휴 이걸...'하며 한 대 칠 것 같았던 집주인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문제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들을까봐 나는 주인의 욕에 대해 반복해서 경고를 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녹음기는 없었지만) 혹시 몰라 녹음 중인데 괜찮냐고 하니 마음대로 하라며 막무가내였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콩닥거린다. 그 욕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내가 무서워서다. 상대는 대머리에 머리가 하얀 60대, 혹은 70대의 노인이다. 나도 모르게 몇 번을 욱하며 달려들 뻔 했는지 모른다. 그랬다면 이 글을 이렇게 한가하게 적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흥분을 애써 가라앉히며 이 글을 쓴다. 이게 다 '집주인'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5년 전 쯤 이 집에 입주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당시로서는) 무리해서 얻은 방 3개짜리 99제곱미터의 1층 집이었다. 모아둔 돈이 없는 지라 반 전세로 월세만 90만 원에 달했다. 와이프는 동네 아이들 돌봄을 하면서 집세를 충당하겠다고 했다. 길다란 구조의 집이라 아이들이 큰 방에서 작은 방 까지 한참이 걸린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벽지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지하도 아니고 1층에 웬 곰팡이가... 하며 조심스럽게 벽지를 들춰본 나는 경악했다. 새까만 곰팡이가 벽지 뒤에 까맣게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조금 더 들춰보니 아무래도 벽 전체가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큰 방의 벽지 한 쪽을 들춰보았다. 결로 때문에 구슬만한 물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벽지는 들떠 있었다. 그러나 더 황당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주인의 반응 때문이었다. 일단 허락없이 왜 벽지를 떼어냈냐는 것이 첫 일성이었다. 그리고 환기를 하지 않아, 보일러를 때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어떻게 입주한지 며칠도 되지 않이 이렇게 새까맣게 곰팡이가 필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항의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려서 그렇다는 말도 안되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혈압이 오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나는 일단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그리고 이 집의 구조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곰팡이의 흔적은 큰 방에 그치지 않았다. 집 밖으로 위치한 외벽 거의 모든 곳에서 곰팡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입주한 때는 겨울이었다. 온도차가 심한 날이었다. 세 개의 방은 물론 바깥 공기와 마주한 거실에서도 곰팡이는 발견되었다. 특히 거실 벽의 아래 쪽 절반은 스티로폴로 엉성하게 마감되어 있었다. 분명 곰팡이와 연관있어 보였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오기까지 우리는 점점 더 번져오는 곰팡이의 흔적과 싸워야 했다. 특히 안방은 벽면 한 쪽 전체가 새까맣게 변할 정도였다. (나중에 단열 벽지를 덧대었지만 곰팡이는 그조차 뚫고 나왔고 벽지는 물결처럼 일어났다) 자세히 보니 외벽의 틈새를 따라 물이 흐른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다시 주인이 찾아왔다. 공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주인은 돌변했다. 모두 관리를 못한 우리의 잘못이라며 기차화통 같은 큰 목소리로 반 나절을 떠들다 갔다. 벽지라도 발라 달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무단으로 벽지를 뜯었다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 그리곤 엠보드라 불리우는 스티로폴?을 본드로 붙이는 시공을 했다. 곰팡이에 본드까지, 게다가 곰팡이의 원인 제거는 하지 않은 채 본드로 가리기만 한 상태의 방을 보면서 새 집의 기쁨은 아예 물 건너갔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세입자가, 임차인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변호사에게도 물어보았다. 비용을 들여 상담도 받았다. 내용증명을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송까지 가더라도 제 때에 돈을 받고 나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주인이 돈을 쥐고 있기 때문에 돌려 받으려면 기나긴 소송을 견뎌야 했다. 이기더라도 상처 뿐인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몇 달을 고민하다 그냥 조용히 살기로 했다. 주인과의 관계가 걱정이 되어 직접 찾아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도 나눴다. 주인 아줌마는 돌아오는 내게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을 주었다. 그냥 참고 사는게 답이지 싶었다. 그 동안은 관계라도 좋았으면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제는 또다른 곳에서 터졌다. 동네 아이들 두 세명의 돌봄을 시작한게 문제였다. 맞벌이 엄마들이 아이들을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고 와이프가 아이들 두 세명을 집으로 들여 간식을 먹이고 학원 등교를 도왔다. 그랬더니 집주인이 난리가 났다. 허락도 없이 수익 사업을 한다는 항의였다. 결국 아이들 머릿 수대로 물세를 따로 내기로 했다. 서운함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두세 명의 아이들이 물을 쓰면 얼마나 쓴다고... 그 돈 3만원을 기어이 받아내는 모습을 보며 저래야 집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기존 관리비 4만원에 3만원을 더한 97만 원을 꼬박꼬박 주인에게 헌납?해야 했다. 그러다 재계약 시점을 놓치고 얼떨결에 2년을 더 살아야 했다. 그러나 집을 내놓았어도 나가기 힘들거란 사실을 4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4년 후 집은 나가지 않았다. 곰팡이의 흔적을 완벽하게 가릴 수 없었다. 결국 부동산에서 집주인과 타협을 본 후 월세를 10만 원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와 이사비, 복비 등의 부담 때문인지 와이프가 그냥 살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으나 결국 그렇게 이 집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그와 상관 없이 집이 나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일단 집주인의 의지가 없었다. 항의해봐야 집 관리를 못한 우리의 탓으로 돌릴 게 뻔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코로나가 왔다. 엄마들은 아이를 더 이상 우리 집에 보내지 않았다. 당연히 3만 원을 제하고 월세를 냈다. 그러자 석달 후 주인 아줌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3만 원 미입금 금액이 누적되고 있으니 부담이 되기 전에 미리 내라는 친절한 통보였다. 코로나로 집세를 깎아주기도 하는 세상에 오지도 않는 아이들의 물세까지 내라는 통보가 그렇게 분할 수 없었다. 사정을 설명하니 그 비용까지 감안해서 7만 원을 깎아준 것이라며 또 말을 바꾸었다. 나는 월세 80만 원이 쓰인 재계약서를 들고 3층 주인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며 또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찾아와 집 관리를 못하는 우리를 탓하기 시작했다. 다시 제습기를 돌리겠다고 했다. 곰파이가 필까봐 벽지도 제대로 바르지 못한채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큰 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는게 신기했다. 나는 다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모르니 내용 증명을 준비하는게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부랴부랴 입주 초기의 사진들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글 드라이브에 사진들이 남아 있었다. 다만 주인이 잘못을 인정한 녹음 내용은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주인에게 문자를 넣었다. 계약서에 없는 부당한 금액 요구에 대해 변호사를 통해 항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두 내외가 아침 9시 무렵 벼르고 벼른채 우리 집으로 들이닥쳤다. 아니 정확히는 문 밖에서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가지가 없다는 말로 시작한 욕은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지하에 살던 입주민이 견디지 못하겠다는 뒷모습을 한 채 문 밖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아이들 때문에 나는 한 마디 항의도 하지 못했다. 택배가 온 줄 알고 런닝 차림으로 나갔다가 당한 봉변이었다. 그렇게 한 바탕 난리를 치고 난 후 주인 아줌마는 보증금 빼줄 테니 당장 나가라는 항의성 문자를 보내왔다. 이게 다 그 '3만원 물세'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 욕을 다 먹고도 집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기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후 또 다른 문자가 왔다. 계약금만 돌려줄 테니 다른 집을 계약하라는 거였다. 보증금을 돌려받는다는 보장 없이 다른 집을 계약했다가 못 돌려받으면 어떻하나 생각이 들어 거절했다. 원래대로 보증금을 다 돌려달라고 하니 부동산 관례대로 하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설사 돌려주더라도 온갖 핑계를 다 만들어 변상금액을 포함시킬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지방 출장을 다녀오는 내내 온 몸을 두들겨맞은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위아래로 눈을 내리깔며 '어휴, 이걸 그냥' 하며 겁박하던 주인의 표정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각자의 방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을 해도, 변호사를 소개받아 상담을 해도 답이 보이지 않았다. 설사 소송을 해도 1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가압류는 조금 빨리 결정이 나지만 수임료만 천 만원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와이프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거였다. 84만 원(80만 원의 월세와 4만 원 관리비)을 내고 살기로 했다는 거였다. 허탈감이 몰려왔다. 순간 사과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주인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우리 두 아이와 지하 세입자들이 모두 들었을 그 욕에 대해 그는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욕을 하지 않았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또 한 번 화가 솟구쳤다. 나는 전화상의 말 실수에 대해서도 무조건 사과를 한 터였다. 젊은이?가 다혈질이라는 훈계도 들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결코 그런 욕을 한 적이 없다며 문을 닫아버렸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30분 가까이 계속되던 폭언의 기억만 덩그라니 남았다. 계약 기간은 아직도 1년 반이 남은 상태다. 3층에 사는 주인을 만날 때마다 그 기억이 떠오르겠지. 와이프의 눈치를 보니 그냥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눈치다. 그 모습을 모두 보았을 아이들 걱정을 하며 되레 나를 원망한다.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운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 지옥같은 집을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는 이 모든 불합리한 상황을 두고도 관례를 따라 조용히 살다가 이 폭탄을 다음 세입자에게 넘겨주고 나와야 하는 것일까?


같은 동네에서 9년 째 미용실을 하는 아줌마와 머리를 깍으며 다양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 동네의 집주인들이 특히 유난스럽다는 하소연?이 이어젔다. 70년 대의 사고방식으로 세입자를 대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와이프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이 동네 집주인들은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 나는 그게 일종의 권력처럼 느껴졌다.사실 이 동네의 부동산 주인들은 다들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30년 이상 된 오래 된 집들이 그렇게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었다. 집주인과 부동산 주인들이 정기적으로 야유회를 간다고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작금의 내 상황이 다른 집주인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릴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러면서 절대로 양보 말라는 훈수를 받았을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하루 단위로 말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견 다정해졌다가 그 다음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한 터였다. 하지만 나는 이 현실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집주인은 임대인일 뿐이다. 판매한 상품에 책임을 져야 하는 생산자?일 뿐이다. 나는 임차인이지 않은가. 하자가 있는 상품에 대해서 항의를 하고 가격을 조정할 수도, 반품을 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임차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이 전세 제도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주인이 갖은 핑계로 보증을 돌려주지 않아도 방법이 없다. 원상 복구의 기준도 모호하기 그지 없다. 다행히 착한 집주인들도 많아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숱하게 많다. 나는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것 뿐일까?


나는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하자가 있는 집이지만 집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주인은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가 봐도 구조적인 문제를 나의 집 관리 문제로 몰아붙였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완벽하게 집을 복구한 채 이사비와 복비를 들여 다른 집으로 이사가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면 나와 같은 문제를 다음 세입자가 똑같이 겪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이 부조리를 이겨낼 방법이 없다. 와이프 의견 대로 겸손한 세입자의 자세로 조용히 살아가는게 정말 지혜로운 것일까? 물론 골치 아픈 세입자들도 있을 것이다. 집을 엉망으로 한 채 무대뽀로 나가는 세입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집주인'은 여전히 임대인 이상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입주 후 에어컨을 설치 할 때의 일이다. 에어컨에서 가까운 창문 옆 외벽에 실외기를 설치하려니 뜨거운 공기가 3층으로 올라온다며 실내 베란다에 실외기를 놓으라 했다. 결국 우리는 18만 원을 더 주고 호스를 길게 뽑아 실내에 실외기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다. 설치 기사가 이런 집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르고 갔다. 입주 초기 방수벽지라도 발라달라고 부동산이 중재를 하니 그 조차도 거절했다. 그런데 이런 집에서 나는 1년 반을 더 살아야 한다. 납작 엎드려야 조용해지는 이 집에서. '집주인'이라는 권력자의 하인?처럼 남은 계약 기간을 살아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해마다 곰팡이로 벽지가 들뜨는 폭탄 같은 집을 다음의 가엾은 세입자에게 넘겨주고 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정당한 일인지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 반반의 책임을 가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고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아마도 집주인과 부동산 주인들의 야유회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지 않았을까?


"한 번 양보하면 끝이야. 버릇을 고쳐줘야 해. 우리는 집주인이고 그 사람들은 세입자잖아. 아니, 아쉬우면 집 사라 이거야.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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