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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맥주집의 작은 로망, No Beer No Life

어느 비오는 토요일 오후,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를 나와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작은 동네였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 딱 어울리는 조그만 수제 맥주집을 찾았습니다. 10평이 조금 넘어 보이는 가게 내부는 인테리어부터 남달랐습니다. 회색, 혹은 검정색으로 마감된 공간은 눈에 띄는 장식물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다만 신경 썼음에 분명한 조명들이 과하지 않게 묵묵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좌석 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분명 누군가 직접 찍었을 법한 사진 작품들이 간간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가게의 이름은 'No Beer No Life',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인 두 주인은 부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특별함은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마자 카드에 쓰인 메시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쓰인 그대로에요. 저희 가게는 한 분, 혹은 두 분만 오셔서 조용히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면 나가주셔야 해요. 그래서 지난 1년 반 동안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이유가 뭔가요?"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꿈꾸었던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좋아하는 맥주를 조용한 곳에서 마시고 싶었거든요. 인테리어를 하면서 딱 두 가지를 요청했어요. 인스타그램에 예쁘게 나오지 않아도 된다, 다만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만 조명을 맞춰 달라고요."


"그렇게 가게를 운영하고도 유지가 되나요?"


"요즘은 자리가 없어서 대기를 하셔야 해요."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으신건가요?"


"그런 욕심으로 시작했다면 죄석수를 30석에서 18석으로 줄이는 결정도 하지 않았을 거에요. 퇴근 후 조용히 맥주 한 잔 하면서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가게의 주인은 바로 그런 손님들이에요. 그런 손님들의 시간을 지킬 수 없다면 이 가게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골들이 많을 것 같아요."


"70% 정도가 단골 손님들이에요. 저희의 고민이 있다면 새로운 손님들이 오기 힘든 곳이 되어 가고 있다는 거에요."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가게는 아닐 것 같아요."


"가방을 메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어렵게 들어오시곤 하죠. 이런 가게는 흔치 않을테니 이해는 되요."



"맥주를 좋아해서 이 가게를 하신 건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남편이 20년 이상 외식업을 했지만 음식이든 맥주든 전문가 급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이 연, 평범한 가게라고 생각하시면 크게 틀리지 않을 거에요."


"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주기적으로 '동굴'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저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죠. 회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누구 하나 쓰러져야 끝이 나는 회식 문화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어요. 왜 술을 꼭 그렇게 마셔야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죠. 이 가게는 그런 저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에요."


"앞으로 어떤 가게로 키워가고 싶으신가요?"


"저나 남편이나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오늘, 그리고 지금 당장의 시간에 충실하자는 주의에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맥주마다 잔 모양도 다 달라요."


"직접 이름을 붙이고 잔도 다 다르게 주문했어요. 하지만 맥주를 직접 만들 능력은 안되어서 양조장에 의뢰해서 만들어오는 구조에요."


"맥주 이름이 은평 페일에일이라니... 어떤 사연이 있나요?"


"저희 부부 둘 다 은평구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그게 다인가요?"


"네."


"벽에 걸린 사진들은 누구 작품인가요?"


"손님이 찍어서 선물해주셨어요. 이 사진들로 저희 가게 맥주캔을 디자인하기도 했죠."


"입구 쪽 테이블은 모양부터가 특이하네요."


"혼자 계신 분이 불편하지 않게 적당히 앞을 가리는 구조로 만들었어요. 조명도 음식이 예쁘게 보이기보다 책 읽기 편한 정도로 조절했구요."



"수제 맥주집인데 맥주도, 음식도, 인테리어도 전혀 튀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하네요."


"저희 가게의 주인공은 '손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다 조연인 셈이죠. 혼자, 혹은 두 사람이 조용히, 행복하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는게 저희의 유일한 목적이자 컨셉이에요."

"그러니까, 이곳은 맥주나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셈이로군요."


"제가 가고 싶었던,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 바로 이런 곳이었어요. 이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그런 시간과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럼 본인은 어떻게 쉬시나요?"


"가게는 일주일에 5일만 문을 열어요."


"혹시 비슷한 가게를 하고 싶으신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 가게가 1년 반 이상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다름아닌 '대출'이었어요.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이 가게를 결코 하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정말 이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하루도 버티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쉽게 시작하지 마세요. 하지만 만약 시작했다면 무조건 버티셔야 해요."


그리고 두어 시간이 다시 지났다. 음식도 맥주도 맛있었다. 그러나 이 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주인 때문이라는 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맥주도 음식도 다른 곳이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주인 부부의 생각을 이해하고 비슷한 맥주 가게를 열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게가 우리 동네에 들어선다면 얼마나 기쁠까.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서 하루를 돌아볼 것이다. 이따금씩 베프인 친구를 불러 고민을 털어놓을 것이다. 가끔은 와이프를 불러 새로 나온 맥주와 안주를 함께 주문할 것이다. 아마도 혼자 사는 미혼의 남녀라면 그런 라이프스타일이 더욱 친근하겠지? 문득 이 가게의 이름이 새삼스레, 새롭게 다가왔다. 맥주 한 잔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삶, 그런 의미라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이름이다. 맥주 한 잔으로 더욱 더 행복해지는 고된 일상의 작은 마침표, 주인의 그 소박한 욕망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No Beer No Life...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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