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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브랜드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크라이치즈버거

중학생들을 상대로 글쓰기를 가르쳤습니다. 워크샵 이후에 반응이 좋아 줌으로 미팅을 했습니다.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라고 하니 대략 이런 질문들이 나옵니다. 첫 줄을 어떻게 써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제목을 잘 지을 수 있죠? 글을 쓸 때마다 항상 마무리가 고민이 되요. 예상했던 질문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거든요. 하나같이 글 잘 쓰는 노하우, 즉 'How'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어 하죠?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요? 무슨 소재로 글을 쓰고 싶나요? 대략 이런 것들을 물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How가 아닌 'Why'와 'What'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항상 글감을 관찰하고 수집하는 사람들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진리에 가까운 교훈을 어느 작은 수제 햄버거 브랜드에서 배웠습니다. 바로 부천에서 시작해 이제 서울을 포함한 6개의 직영점을 가진 '크라이치즈버거' 이야기입니다.



이 버거엔 순소고기 패티와 치즈, 양상추, 양파, 토마토가 들어갑니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브랜드입니다. 한 마디로 기본에 충실한 버거입니다. 그런데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버거 마니아들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먹어본 인앤아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초창기 버거킹의 맛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가보고 주변에 물어보아도 그 '맛'의 비밀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표를 만나 직접 공장까지 찾아가 그 비법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답은 비슷했습니다. 다른 고기를 섞지 않은 순소고기 패티는 냉동이 아닌 냉장으로만 배달됩니다. 패티는 주문 즉시 굽기 시작합니다. 세계 최고의 튀김용 감자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그렇게 발견한 감자튀김은 호주의 어느 작은 브랜드에서 찾았습니다. 나는 이들에게서 '장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치 1장의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퇴고를 거듭하는 어느 작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비결'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본과 원칙을 중시했습니다.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특별한 재료나 장치를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버거의 맛은 담백하기 그지 없습니다. 몇 십년 만에 메뉴 하나를 겨우 추가했다는 인앤아웃의 정신을 존중합니다. 이들이 만드는 버거에 중요한 것은 'How'가 아닙니다. 그 대신 스스로 이런 질문들을 던집니다. '왜 우리가 최고의 버거를 만들어야 하지?' '정통 버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는 무엇일까?' 이 고민에 답하기 위해 회사의 대표는 매장이 아닌 공장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햄버거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최적의 패티의 두께, 치즈의 두께를 고민하기 위해서입니다. 양상추는 그 아삭함을 지키기 위해 2Kg 포장이 아닌 1Kg 포장을 고집합니다. 치즈의 크기는 물론 소금의 두께까지 고민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게 이 회사의 대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본을 지키는게 가장 힘들어요."



원칙을 지키는 일은 어렵습니다. 크라이치즈버거 역시 최고의 조합을 찾기 위해 온갖 재료를 햄버거에 다 넣어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다른 재료들엔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이 5가지 재료들에서 최고의 맛을 찾아내는 일마저도 버겁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 밀크 쉐이크는 원가 비율이 가장 높은 최고급 원료만을 사용합니다. 주문 즉시 패티를 굽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프랜차이즈 매장 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을 고용합니다. 최근엔 막 구웠을 때 너무다 바삭한 맛이 나는 최고의 감자를 찾아 온 직원이 흥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바로 눅눅해지는 감자의 특성 때문에 5천 만원에 달하는 수입 감자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버거 마니아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감자 튀김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한 때는 부천의 자랑이던 이 브랜드가 서울에 입성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부천 매장에서 알바를 하던 직원들은 삼성점과 양재점, 상암점의 점장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크라이치즈버거와 함께 일한 지난 두어 달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좋은 글이란 자극적인 시작이나 화려한 마무리, 감각적인 제목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이 쓸 수 있는 글감을 수집하고 갈고 닦아야 합니다. 크라이치즈버거는 세계 최고의 버거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만들어가는 브랜드입니다. 그 '이유'에 공감한 직원들이 남아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비법이 들어간 소스나 자극적인 재료가 아닌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신선함과 친절함이라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원래의 맛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서기 전까진 배달도 마다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버거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금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이 성장하는 중입니다. 제가 쓰는 글도 그렇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작은 브랜드들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서 사랑받는 그런 세상, 제가 글쓰기를 통해 도달하고 싶은 행복한 세상입니다.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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