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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와 '엣시'가 거꾸로 걸어간 까닭은?

저도 모르는 새에 가수 이소라의 새 음반이 나왔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바람이 분다'가 수록된 6집 앨범을 다시 발매했다고 하네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봤더니 다름아닌 LP판이더군요. 가격이 무려 13만 원이나 합니다. 그런데도 이 음반은 발매 1시간 만에 매진을 기록했어요. 일부 사이트에선 1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하네요. 자수로 만들어진 LP 재킷에 큐빅을 직접 붙여 만들었다고 합니다. 일반 LP보다 무려 4배 이상의 제작 기간이 필요했다는군요. 이걸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새도 없이, 선택권이 사라진 앨범 사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사실 LP판을 샀다 해도 노래를 들을 방법이 아예 없는데 말입니다.



혹시 '엣시'라는 사이트에 대해 들어보신 적 계신가요? 이곳은 오로지 손으로 만든 것만 사고 팔 수 있는 수공예품 전문 온라인 사이트입니다. 빠른 배송과 최저가 경쟁으로 치열한 이커머스 업계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곳입니다. 오히려 '느리고 비싸지만 나만의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습니다. '아마존에 없는 것을 판다'가 일종의 모토인 곳입니다. 이곳에서 철저히 금지되는 건 다름아닌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입니다. 올해 2분기 기준, 엣시에서 활동 중인 판매자는 310만명, 구매자는 6,030만 명에 달합니다. 거래 금액만 무려 26억8,900만달러(약 3조1,300억원)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LTE를 넘어 5G 망이 깔리는 시대에 이 무슨 아날로그의 태풍이란 말입니까.


엣시의 창업자인 로버트 칼린은 원래 목수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목공예품을 이베이나 아마존의 공산품들 사이에서 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하네요. 이곳에선 액세서리, 가구, 옷, 디자인이나 그림을 담은 디지털 파일 등이 주로 거래됩니다. 직접 만들어 낸 결과물만 거래 대상입니다. 가격보다 독창성, 장인정신 등이 강조되는 곳이죠창작자와 구매자들이 직접 만나 개인 간 거래(P2P)를 하는 공간인 셈입니다.



이곳 엣시의 판매자와 구매자는 생산자와 판매자가 아닌 예술가와 팬에 더 가깝습니다. 작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고 서로 의견도 주고 받기도 하죠. 엣시에서 연간 6회 이상 구매하는 사람은 무려 400만명에 달합니다. 유대관계와 정보 교류 등을 위한 행사가 수시로 열리고, 온라인 토론 공간도 활발합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을 시작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빠른 배송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가격 경쟁도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창작자들도 부담 없이 입점합니다. 업계에선 '넥스트 아마존'의 한 유형으로 평가한다고 하네요.


이소라와 엣시는 시대를 거스르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일정 부분 성공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가성비와 같은 제품 자체의 차별화 보다는 남다른 생산과 유통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전에 없던 무엇이 아닙니다. 우리의 DNA 속에 새겨진 '아주 오래된 방식'의 거래를 디지털 시대에 또다시 소환하고 있습니다. '당근 마켓'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물 거래의 정겨움을 동네를 기반으로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이소라가 파는 것은 과연 'LP'판 그 자체일까요? 어쩌면 추억이자 경외의 마음이 아닐까요? 엣시가 파는 건 단순한 수공예품이 아닐 것입니다. 그 제품 하나에 들어간 시간과 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딩의 기본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제품과 서비스에 '가치'를 담아내는 방법을 또 한 번 고민합니다. 남들이 온라인 뮤직 시장의 상위 사이트에 오르려 발버둥 칠 때, 이소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했습니다. 아마존과 쿠팡이 가격과 속도로 경쟁할 때, 엣시는 소리 없이 창작자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는 그들만의 플랫폼을 만들어내는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례는 거대한 공룡들이 시장을 잠식해가는 이 시대에 작은 회사와 가게가 살아남는 또 한 가지 힌트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걸 넘어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보세요. 어쩌면 그 길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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