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중고 거래 사이트 '당근'에 다음과 같은 매물?이 올라왔습니다. '열심히 쓴 일기장'이랍니다. 가격은 권당 3000원이라고 하네요. 심지어 안 쓴 일기장이 아니라 '다 쓴' 일기장입니다. 제품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꿀잼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나중에 훨씬 더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다는 '보증'까지 붙어 있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 친구?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이 정도의 위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저 뿐이 아니었나 봅니다. 뒤이어 화답에 가까운 댓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낱권이 아닌 묶어서 삼천원이면 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흔히들 브랜드 스토리 하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스토리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도 종종 만납니다. 물론 사실에 기반한 아름답고 울림이 있는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브랜드 스토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회사는 사실 흔치 않은게 사실이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브랜드 스토리 텔링을 가장 잘하는 기업이 '당근마켓'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고 훈훈하고 위트 넘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곳이거든요. 반경 6km 이내의 동네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다보니 이런 스토리가 수없이 만들어집니다. 3,000원 짜리 아이 옷을 팔았더니 렉서스를 몰고 온 아저씨가 와이프 심부름이라며 슬리퍼를 끌고 나타납니다. 이건 실제로 우리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당근 마켓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월간 사용자 수는 전자상거래 앱 시장에서 쿠팡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의 지난달 월간 순이용자 추정치는 1085만 명에 달합니다. 2015년 7월 ‘판교장터’로 시작한 당근마켓은 최근 누적 앱 다운로드가 2000만 건을 넘기면서 중고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습니다. 동네 기반의 중고 거래다 보니 택배를 주고받기보다 직접 만나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례가 많습니다. 샘물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솟아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면 같은 중고 제품을 파는 '중고나라'는 어떤가요? 훈훈한 이야기는 커녕 사기 당한 이야기로 넘쳐납니다. 그 차이는 바로 이 서비스를 만든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당근마켓을 만든 창업자는 “물건을 거래한다는 목적보다는 ‘안 쓰는 물건을 동네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개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중고 거래에만 머물지 않고 동네 주민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고도 말하네요. 이런 당근마켓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신뢰'입니다. 같은 동네 주민끼리 거래하기 때문에 사기 위험성이 낮습니다. 거래 상대방의 평가가 쌓이는 ‘거래 매너 온도’는 판매자가 평판 관리에 신경 쓰도록 합니다. 당연히 품질이 낮은 물건을 계속 팔기 어렵습니다. 중고나라 까페가 그냥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곳이라면 당근마켓은 이렇게 신뢰와 믿음, 교감이라는 차별화된 '가치'를 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근마켓의 지난해 연간 거래액은 7000억원에 달합니다. 올해는 1조원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네요. 많이 팔고 많이 벌면 되었지 가치는 무슨 가치냐고 투덜거리는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중고 물품의 가치는 그저 '가격'으로만 매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고 거래하는 가운데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아닌기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이 아이가 쓴 일기장은 거래가 되었을까요? 정말로 권단 3000원에 사가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의식 속에 '당근마켓'이 강력한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 당근마켓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습니다. 염려 마세요. 일기장은 아니니까요. :)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