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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하고로모' 분필 이야기

2019년 5월, 한 유튜브 채널에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내노라 하는 미국 명문 대학의 수학 교수들이 출연했다. 영상의 제목은 ‘왜 세계적 수학자들은 분필을 사재기 했나(Why the World’s Best Mathematicians Are Hoarding Chalk)’였다. 이 영상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 분필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이 손애 쥔 분필의 이름은 '하고로모', 이 영상은 2020년 10월 현재 1,70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평생 분필을 만지며 살아온 이들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가진 힘 때문이었다.


하고로모, 누가 봐도 일본 이름을 가진 이 브랜드는 사실 한국의 분필 브랜드이다. 2016년 재수종합반 수학 강사가 90년 된 이 브랜드를 인수했다. 현재 학원 강사의 80~90%는 이 분필을 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나 역사 강의로 유명한 설민석 강사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한 강의에 200~300명이 수업을 듣는데, 뒷자리 학생도 잘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 이토록 유명하고 품질 좋은 일본의 브랜드를 한국 사람이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일까?



1932년, 일본에서 첫 생산된 이 분필은 손자가 계승해 3대째 가업으로 이어져내려 오고 있었다. 일반적인 석고 분필과 달리 탄산 칼슘으로 만들어진 이 분필은 쇳소리가 나지 않고 선명한데다 잘 부러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분필 가루가 날리지 않고 곧장 바닥으로 떨어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갈 염려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와타나베 사장의 건강이 악화되어 가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물론 처음에는 일본에서 이 브랜드를 인수할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이 기술은 원하면서도 브랜드는 원치 않았다. 120년 된 일본 최고의 칠판 회사도 오직 분필의 제조법만을 원할 뿐이었다. 결국 와타나베 사장은 폐업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전 세계에서 이 분필을 사재기 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난리가 났다. 그리고 이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의 신형석 사장도 있었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강사였다. 교수를 꿈꾸었으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한 달에 100만 원을 버는 시간강사로는 차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입시 학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운명처럼 하고로모 분필을 만났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분필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본에 있던 제자들에게 연락해 구매 대행을 부탁했다. 한국의 회사들은 '비싼 분필'은 아무도 사지 않는다며 생산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2009년 직접 회사를 차려 하고로모 분필을 국내에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서 와타나베 사장의 폐업 결심을 전해들은 거였다. 그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인수 의사를 밝혔다. 그의 진심을 읽는 와타나베 사장와 딸이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다.


사실 신 대표는 이 결정을 내린 직후 굉장히 후회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투자한 비용만 7~8억 원, 유명한 재수 학원의 원장 자리도 거절하고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출을 받고 여기 저기서 돈을 끌어 모으는 등 모든 걸 쏟아부었다. 와타나베 사장도 수천 만원짜리 기계를 100만 원의 헐값에 파는 등 힘을 보탰다. 그렇게 일본 업체가 거절했던 하고로모 분필은 모든 생산 기계를 나고야에서 포천으로 옮겨와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 하고로모에서 일하던 재일 3세 직원까지 한국으로 넘어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 일본의 브랜드가 한국으로 건너와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하고로모 분필은 남다르다. 보통의 분필은 한 수업에 6,7개가 부러지지만 이 분필은 부러지지 않는다. 3,4배의 가격에도 사람들이 찾는 가장 큰 이유이다. 탄산칼슘이 원 재료인데 그게 바로 조개 껍질이다. 보통의 회사는 조개껍질 100%로 만들지만 하고로모는 굴 껍질을 비롯해 6,7가지가  원료가 더 들어간다. 생산 과정도 길다. 다른 곳에선 하루 만에 만들 물량을 하고로모는 일주일 걸려서 만든다. 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이 브랜드의 재탄생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된다. 브랜드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이 작은 분필 하나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의 공장으로 건너와 생산 공정을 일일이 확인하는 와타나베 사장의 뒷모습에서 브랜드의 진정성, 스토리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케 된다.



와타나베 사장이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일본의 업체들에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하고로모'란 이름을 지켜달란 거였다. 그러나 이 조건을 기꺼이 수용한 사람은 다름아닌 한국의 신형석 대표였다. 와타나베의 세 딸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을 수 없었다. 그 중 한 사위가 인수를 시도했다가 두 달만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결국 이 브랜드의 '가치'를 알아본 한국의 사장에게 그는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일본은 자국의 기술이 유출되어 안타까워했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브랜드라며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진심은 시장에서 매출로 확인되었다. 인수 초기 3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9년 15억 원을 훌쩍 넘기며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소비자들은 오히려 이들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기억하며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가치'가 담겨 있다. 그 가치는 기본적으로 이 분필의 쓸모에 관련된 것이다. 단단하고 잘 부러지지 않으며 가루가 날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분필에 대를 이어 지속되는 장인 정신이 더해지고, 그 정신을 알아본 사업가에 의해 가치가 전달되면서 '하고로모'란 이름은 단순한 분필,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하나의 감동적인 스토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의 목적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기어이 브랜드가 된 많은 제품과 서비스들은 수익 그 이상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구분화 차별화를 위해 필요한 '이름'이 '브랜드'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이 과정은 마치 누에고치가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나비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p.s. 참고로 하고로모란 이름은 한자로 날개 익(羽), 옷 의(衣)란 뜻을 가지고 있다.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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