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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난향동 '마을과고양이'를 찾아가다

가장 가까운 1호선 금천구청역에서 네비를 찍으니 정확히 5.8km가 나왔다. 차로 20여 분 이상을 달려 도착한 난향동은 같은 서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멀고도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아마도 지하철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동네를 서울에서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지도가 더 이상 집들을 보여주지 않는 산꼭대기 끝에 위치한 그곳에 차를 대니 가장 먼저 고양이들이 눈에 띄었다. 산과의 마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바로 이곳에 회색, 치즈색, 검은색 고양이가 한가로이 밥을 먹으며 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무리의 중심에 서너 개의 고즈넉하고 컬러풀한 고양이 급식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 급식소를 만든 박용희 대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운명처럼 이 고양이를 만난 곳도 다름아닌 이곳이었다.



박용희 대표는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다. 흔히들 고양이는 만화가들의 친구다. 강아지보다는 독립적인 그들의 성향 탓일까? 유독 만화가들 근처에는 고양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박대표도 바로 그런, 고양이를 사랑하는 만화가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박대표의 경우는 달랐다. 2016년, 운명처럼 고양이를 마주하기 전까지 그녀는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하얀색 털의 오드 아이를 한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녀의 집을 찾아왔다. 흰색 털이었기에 유독 더러웠던 그 고양이는 스스럼없이 그녀의 침대에 드러누워 몸을 부벼댔다. 그리고 이 만화가의 팔을 배고 곤한 몸을 맡기고 잠까지 들었다. 박대표 역시 그 고양이와 함께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계속된 불면증이 사라진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후배 만화가의 증언은 다음과 같았다. 박대표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고양이가 문 밖으로 사라졌다고 말이다.



이 만화가는 이제 그런 고양이를 돕는 사회적 기업 '마을과고양이의' 대표가 되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난향동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발음을 곱씹어보니 난향동이 아니라 '나냥동'처럼 들린다. 냥이들의 마을인 것이다. 어디에나 길고양이는 있다. 하지만 세 동의 급식소가 차려진 이 마을의 고양이는 박대표 때문에 행복하다. 만 4년이 된 지금 30년 이상 터전을 두고 살아온 마을 사람들도 이제 이 고양이들에 익숙해진 듯 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마을 할머니들도 이제 '좋은 일 한다'며 박대표를 칭찬하는, 아니 적어도 길바닥에 주저 앉아 울게 만드는 야박한 대접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 두 손을 들어 반기는 것도 아니지만 대놓고 구박하는 것도 아닌,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는 이 마을이 바로 '마을과고양이'의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마을과고양이'는 길고양이를 위한 급식소와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박대표는 이 고양이들의 뒷치닥거리를 하느라 본업인 만화 그리는 일에서 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고양이들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마을 사람들이 바로 바로 신고?를 해온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두고 고양이 먹이를 받아가는 할머니도 생겼다. 로드킬을 당하거나 들개들에 나쁜 일을 당하면 가장 먼저 찾는 것도 박대표이다. 한 달에 50에서 100만 원 들어가는 사료값도 모두 사비로 충당한다. 하지만 사료값은 병원비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다. 수백 만원이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래도 이 만화가는 고양이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이 길을 끝까지 한 번 가보겠다고 한다. 비혼자인 그녀에게 고양이는 가족과 같이 때문이다. 이야기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보기 위한 '여행'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운명'이란 말의 참 뜻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디에나 길고양이는 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캣맘이 있다.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어디에나 있다. 길고양이는 우리에게 풀기 어려운 '문제'다. 중성화 수술을 해서 개체 수를 조절해가며 공존을 꾀한다. 입양을 시킨다. 소극적인 방법이다. 고양이의 수명은 약 20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길에서 자라는 고양이의 수명은 채 2년, 3년을 넘기지 못한다. 박대표의 꿈은 그런 고양이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롤모델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캣맘들이 주는 먹이가 젖지 않는 급식소를 만들고 있다. 길고양이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굿즈를 만들고 있다. 한 집 다른 층에 사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그녀의 후배도 그녀 때문에 이제 고양이를 만질 수 있다. 먹이를 주었다가 쥐와 곤충의 사체를 선물로 받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는 다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사람과 고양이가 충분히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 둘씩 확인해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적 기업이란 이렇듯 사소하면서도 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가는 기업들을 말한다. 내가 아는 가장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마리몬드'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수익화에 성공했다. 심리 치료를 받는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꽃잎 패턴을 모아  다양한 굿즈를 만들어 팔고 있다. '마을과고양이'가 꿈꾸는 미래도 아마 그런 모습일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도, 길고양이도,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문제들이다. 그런 문제와 아픔에 일찍 눈을 뜬 사람들이 바로 캣맘들이다. 마을과고양이의 박대표와 같은 사람들이다. 이 곳을 다녀오며 작지만 다부진 꿈 하나를 가지게 됐다. 가로수, 세로수길, 경리단길만 유명해지란 법은 없다. 바로 이곳 난향동이 그런 마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대표의 집 앞에는 치즈빛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른한 표정으로 쉬고 있었다. 그 고양이의 표정이 이 마을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 세 마리, 루이와 까망이 별이가 다시 보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여유롭고도 당차보이는 표정 때문이었다.





* '마을과고양이'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굿즈와 급식소도 구매하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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