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기타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 정도 여유는 있지만 평소보다는 과한 지출이었다. 문득 얼마전 중고로 구매한 후 거의 쓰지 않은 카메라 생각이 났다. 중고나라에 올렸다. 연락이 쇄도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날 동네 지하철역으로 찾아왔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직접 제품을 보더니 갖가지 딴지를 걸며 가격을 낮추려 했다. 가격보다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안 팔겠다고 했다. 그러자 '분노'하며 나를 가로막아섰다. 제품을 쥐고 놓지 않았다. 그렇게 40여 분을 버티다 신고한 경찰이 오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가 마지막 뱉은 한 마디와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씨*넘아..."
어린 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괴물 같았다. 그래봐야 2,3만 원일텐데 그걸 깍아보려다 마음대로 안되니 분노로 폭주했다. 내 카메라를 쥐고 놓지 않던 그 단단한 손마디의 감촉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이들 뿐일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매일 비교당하고 경쟁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괴물이었던 적은 과연 없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홈'은 동명의 웹툰을 화면으로 옮긴 수작이다. 이 드라마도 일상의 괴물들을 이야기한다. 갑질과 스트레스로 인간이 아닌 무엇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에 관한 이야기다. 썩은 생선을 선물로 받은 경비원,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히키코모리, 다이어트와 직장 스트레스로 인간성을 상실한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의 폭이 컸다. 하지만 드라마는 절망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극 속에서 '성장'을 경험한다. 가장 속시원했던 장면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다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착하고 용감한 괴물로 변해가던 그 장면이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엄마는 그렇게 스스로를 희생함으로 다른 누군가의 아이를 구하는데 몸을 던진다.
이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웹툰이 낫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중반 이후부터 느슨해지는 이야기와, 서둘러 끝낸 듯한 마지막 부분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무려 10부작을 이틀만에 정주행할 만큼 몰입감과 공감대가 넓었던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올해의 작품으로 꼽고 싶을 정도다. 그건 이 드라마가 지금의 우리가 안고 있는 '갑질'과 같은 다양한 분노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 절망 가운데서 한 줄기 희망을 건져올렸기 때문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은 상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은 끝내 인간다워질 수 있다. 이 시대에, 우리 세대에 꼭 필요한 질문과 답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10시간의 정주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