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늦은 오후, 이태원의 골목은 한적했습니다.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평화로웠지만 어째 이태원답지 않다는 기분이 떠나지 않았어요. 아마도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먹거리 축제 현장이 이곳에 관한 제 마지막 기억이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같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이런 곳이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입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스타일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소에 되어줄 것이 분명하니까요.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정중동의 시간이라고 위로하며 굽이 굽이 골목길을 올라 목적지인 '노스트레스 버거'에 도착한 건 점심 때를 한참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버거 가게에 대해서는 '핫'하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미리 알고 가면 발견의 기쁨이 덜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하나의 버거 가게로 냉정하게 바라보고 싶은 욕심이 앞섰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버거 가게는 제가 어릴 적 살던 동네 구멍 가게의 모습과 매우 흡싸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먼지 낀 입구의 알루미늄 샷시 문부터 서너 평이 채 되지 않는 좁은 내부에 서너 개의 테이블이 전부인 이곳에서 아주 색다른 감흥을 느끼긴 쉽지 않았습니다. 주문한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나온 햄버거는 풍성함과는 거리가 먼, 마치 동네 분식집에서 먹는 핫도그의 맛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빵과 치즈, 고기와 피클에서는 아주 익숙한 치즈버거의 맛 이상의 무엇을 생각해내긴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이 가게는 핫해지고 힙해질 수 있었을까요?
이 버거 가게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심플함입니다. 공간도 음식도 단순 명확합니다. 새빨간 플라스틱 쟁반에 담겨 나온 햄버거를 먹는 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빵도 패티도 얇은 데다 짠맛이 강하다보니 맥락 없이 콜라만 들이켜게 됩니다. 제겐 오히려 감자 튀김에 더 많이 손이 갔습니다. 동행한 크라이치즈버거 이사님 얘기를 들어보니 두 버거가 같은 감자튀김을 쓴다고 하네요. 크라이치즈버거에만 제공하기로 한 감자라 한 동안 항의를 했다는 뒷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익히 아시다시피 이 감자는 맛있습니다. 하지만 버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더 설명드릴 무엇이 없는 평범하고 익숙한 그런 맛이었습니다.
자연히 화제는 디테일로 옮겨갔습니다. 이것이 컨셉일지는 모르겠으나 노스트레스버거는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녹과 먼지가 가득한 턴 테이블과 오래된 맥북을 가져다 놓은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창틀은 언제 청소했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묵은 때가 가득했구요. 마치 어린 시절 장사가 되지 않는 문방구에서 담배를 피던 주인 아저씨의 긴 한숨이 떠오르는 오후였습니다. 인위적인 컨셉이 아닌 손을 놓은 듯한 버거 가게에서 우리는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섣부른 억측일지 모르나 카피도 쉽고 관리도 되지 않은 이 브랜드 버거가 오래 갈 것 같지 않다는 얘기는 굳이 함께 한 이사님께 말씀드리진 않았습니다.
빈티지도 좋고 심플함도 좋고 레트로 스타일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컨셉으로 철저히 관리될 때 힘을 발휘합니다. 스타일을 핑계 대고 가게와 브랜드를 관리하지 않는 건 위험한 변화라 생각합니다. 이 가게가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버거 가게의 주인분이 딴 생각을 하고 계시구나.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도 사람 손을 타면 시간의 힘을 견뎌내는 걸 보았습니다. 속히 노스트레스버거가 초심을 되찾기 원합니다. 빵과 패티, 치즈라는 간단한 조합으로 햄버거 본연의 모습을 재정의한 그 첫마음을 지켜주세요. 맑은 날 햇빛이 기분 좋게 들이치게 가장 먼저 청소부터 해주세요. 맛은 그 다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떠나는 건 정말 한순간이니까요.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