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차별화'의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차별화'에서 '화'라는 글자 하나만 떼도 그 의미가 선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수많은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키로 인한 차별 때문에 고통 받은 기억이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별은 성적 아닐까요? 한 반의 수십 명을 한 번에 일렬로 줄을 세울 수 있는 강력한 스펙의 힘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성적 말고도 아이들을 줄 세울 여러가지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으니까요.
저희 집 첫째는 기타를 잘 칩니다. 그래서 지금 실용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고3의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둘째는 성우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갖은 비교를 다 당하면서도 연기 학원에 꿋꿋이 다니고 있죠. 다행히 저와 와이프는 아이들이 최대한 하고 싶어하는 걸 하게 해준다는 데 동의하고 비싼 학원비를 물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 성적 말고도 다양한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성적을 통한, 스펙을 통한 차별화는 여전합니다. 그 효과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보 보면 가로수길의 끝자락에 위치한 '패티앤베지스'는 햄버거의 차별화를 다소 단순하게 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뚜렷한 컨셉 보다는 '패티'에 집중한 모습이 선명했으니까요. 이 버거의 패티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다진 고기이긴 하지만 최근에 맛본 한우 구이의 맛을 잠깐이나마 떠올리게 했으니까요. 살짝 미디엄으로 구워진 고기에서는 여타의 수제 버거에서는 맛보기 힘든 레어한 고기의 맛이 느껴졌습니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엔 야채가 전혀 들어있지 않습니다. 두터운 패티에 함께 나오는 치즈가 전부입니다. 오로지 패티의 맛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결기가 느껴질만큼 단순 명확합니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습니다. 카피가 쉽다는 겁니다. 그래서 차별화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사실을 금새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남과 다르게 만든다고 차별화가 되는게 아닙니다. 남이 따라하기 힘들어야 합니다. 학교에서의 성적이 그토록 강력한 이유는 따라하기 힘들어서가 아닐까요? 알면서도 1등의 성적으로 복제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면 성적은 오르지만 그걸 알면서도 좀체 따라잡기 힘든게 팩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패티엔베지스의 햄버거는 아주 훌륭한 차별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더 두껍고 더 맛있는 고기와 조리법을 찾아낼 것만 같거든요.
다운타우너는 비주얼로, 노스트레스버거는 심플함으로, 르프리크는 핫 치킨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게는 시스템으로 차별화한 맥도날드와 미국스러움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쉐이크쉑이 적어도 차별화에 있어서는 더욱 강력하고 지속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후자의 경우보다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따라잡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크라이치즈버거 이사님과 함께 버거 투어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은 '햄버거는 어렵다'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곧 차별화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연구하면 할수록 맥도날드와 버거킹 같은 브랜드가 위대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단순히 큰 브랜드라서 그런건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흉내낼 수 있는 메뉴에 따라하기 힘든 '시스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거든요. 수제버거가 독특함과 가격으로 승부하는 건 프랜차이즈 버거를 흉내내기 힘들어서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햄버거 가게나 한 번 차려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창업에 뛰어들었다가는 큰일 날 만한 시장이 바로 햄버거 시장입니다.
크라이치즈버거는 일반 프랜차이즈 버거와 수제 버거의 중간 어디쯤 그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기본에 충실한 버거를 지향하고 있죠. 주문 즉시 굽고 순쇠고기를 고집하는 등 재료에 집중하는 모습은 언뜻 수제 버거의 고집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가격대를 보면 일반적인 수제버거가 도저히 흉내내기 힘든 나름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어려운 균형잡기를 지난 7년 이상 해왔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일반 고객들은 여전히 '크라이치즈버거다운' 차별화 요소를 가성비 이상에서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수제버거의 맛과 프랜차이즈의 시스템을 동시에 지향하는 크라이치즈버거는 그 답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요? 이 버거 투어를 통해 그 답을 꼭 찾아내고 싶은게 제 욕심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