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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태어난, '고양이'를 부탁해!

3번째 새끼 고양이를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왔다. 따스한 오후의 햇빛이 그대로 들이치는 동네 뒷산 나무 아래였다. 이제 마지막 한 마리 '현이'가 남았다. 현충일날 발견된 4마리 중 살아남은 3마리에는 각각 현,충,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씩씩하고, 또 못생긴 검은 고양이였다. 힘이 아주 쎄서 발톱이 따끔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높이가 낮은 종이 박스를 수시로 넘나들어 새 박스로 바꾸곤 했다. 하지만 이 네 마리 모두는 생후 2개월 미만의 새끼 고양이들에게 무려 95%의 치사율을 가진 범백에 걸린 듯 했다. 한 마디로 걸리면 죽는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결국 그 네 마리 중 세 마리가 그렇게 고양이별로 돌아간 것이다.



예외는 없었다. 설사를 하고 혈변을 보는 전형적인 범백 증상은 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진 건 워낙 활동적이고 목소리도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 오후부터 수시로 기침을 하고 기력이 떨어지고 목소리마저 작아졌다. 범백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새끼 고양이들을 순식간에 무기력하게 만들곤 했다. 자연스럽게 식사량은 줄어들고 살은 빠지고 몸은 차가워진다.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녘 먹는 듯 마는 듯 분유를 마신 애를 배 위에 올려두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때였다. 고양이들이 기분이 좋을 때면 내는 '골골골송'이 들려왔다. 나는 그게 이 아이의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었다.



악몽을 꾸고 선잠을 잔 채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틀림없이 현이는 죽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식욕도 돌아와 있었다. 막 타온 새 분유의 절반을 숨도 쉬지 않고 먹어댔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드디어 설사가 아닌 된 똥을 누기 시작한 것이다. 색연필 심 만한 똥을 보고는 또 한 번의 희망고문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아 이 녀석, 어쩌면 살 수도 있겠구나...



새끼 고양이 한 마리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나는 친구들 중엔 유기묘를 보고 좋게 이야기한 녀석이 한 놈도 없었다. 충분히 이해한다. 사람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도시 생태계를 위협하는 길고양이라들이라니... 하지만 어쩔 것인가. 사람 생명 소중하듯 이왕 태어난 생명은 동물도 존중받아야 한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저 숨을 쉬고 있는 모든 것은 나름의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 본능을 따를 뿐이다.



아직 한 손에 잡히는 아주 작은 생명체다. 오늘 세상을 떠도 이상하지 않은 아이다. 그래도 일주일 째 생명의 끈을 놓치 않는 이 녀석을 응원하고 싶다. 여전히 기침을 하고 얼굴 한 쪽은 어쩐 일인지 부어 있지만서도, 살아만 남는다면 아껴주고 사랑해줄 그 누군가에게 입양을 보내고 싶다. 그게 이 녀석과 내가 만난 인연이 만들어낼 가장 큰 해피엔딩이겠지. 부디 힘 내기를. 그래서 정말 좋은 주인을 찾아가기를. 혹 아는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그 행복한 인연의 끈을 이어가게 될지. 현아 힘내라. 혹 아니? 니가 살아남으면 다홍이처럼 사랑해줄 수홍 삼촌이 나타나게 될지. 그래 일단은 기어이 살아남는데 집중하자. 먹고 자고 싸자. 파이팅이다.








p.s. 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새끼 고양이 '현이'가 고양이별로 돌아갔습니다.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눈도 뜨고, 엄마 고양이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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