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라이더, 라이더

나는 다른 어떤 운동보다 산책이 좋았다. 하지만 큰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운동 효과가 사실상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달리기는 싫었다. 물론 힘든 것도 컸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턱없이 부족한 기초 체력 때문이었으리라. 단 몇km만 뛰어도 숨이 가빠오는데 보이는 풍경은 늘 제자리렸다. 그러다보니 매일 달리는 일이 고역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안 뛰어도 될까, 핑계를 찾게 되었다. 가장 안전하고 최고의 운동 효과를 보장한다는 점에는 지금도 이견이 없다. 다만 내게 가장 '알맞은' 운동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자전거 생각이 떠올랐다. 운동 효과는 달리기보다 못할지 몰라도 일단 재미 있을 것 같았다. 당장에 친구의 추천을 받아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샀다. 아마도 그 때가 자가 격리 기간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안 나가는게 아니라 못 나가는 상황은 느낌이 달랐다. 당장 뛰어나가 페달을 밟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싶었다. 시간이 더디 갔다. 그동안 '인생이 운동'인 친구로부터 라이딩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씩 주문했다. 헬멧, 장갑, 물통, 물통 거치대, 자물쇠, 스마트폰 거치대와 야간 주행용 라이트까지... 이제 남은 건 하나, 달리는 일이었다.


오래도록 자전거 탈 일이 없었다지만 적응은 쉬웠다. 약 열흘 간 꾹꾹 눌러담은 욕망을 담아 페달을 밟았다. 상쾌했다. 친구가 회사 연수를 가서 공부 대신 고르고 골라준 썸탈 자전거는 쭈욱쭉 잘도 나갔다. 무엇보다 분당 탄천의 자전거 길은 환상이었다. 오르막 하나 없이 곧게 뻗은 평지를 거침없이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게 5일을 꼬박 달리고, 주말엔 겁도 없이 한강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시간 15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버스 아니면 지하철로 늘상 시름하던 서울은 뜻 밖에 가까웠다. 그리고 알았다. 라이딩이 내게 잘 맞는 운동이란 것을.



내게 자전거와 갖은 용품을 매일 주문하게 만든 친구는 8살 자리 아들과 국토 종주를 해낸 독한 녀석이다. 폭풍우가 치는 날 새벽 6시에 여관을 나서는 부자를 보고 주인은 신고를 하려고 했단다. 하기야 그 아들을 데리고 바다 수영을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녀석이니... 그의 운동 사랑은 대한민국 어느 누구를 가져다 놓아도 지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그 위험한 오토바이를 새벽 3시에 타는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자전거와는 다른 상쾌함이 있지.

그런데 삐끗하면 바로 죽을 수 있는 오토바이 위에서는

온 감각을 눈 앞의 것들에 집중해야 해.

그리고 모든 고민을 잊게 되는 거지.

그렇게 라이딩을 마치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단다."


친구의 아들, 조만간 이들과 팔다댐을 달리고 싶다.


시속 20km를 왔다갔다 하는 내게 그가 느끼는 속도감과 몰입은 비교할 게 되지 못하리라. 하지만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당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생전 처음 보는 풍경으로 가득했다. 왜 이제야 알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친구 얘기로는 전국에 그보다 아름다운 길이 숱하다고 한다. 글을 쓰려면 시야가 넓어야지. 함께 자전거를 타기로 한 날, 자신이 기다리던 다리 이름이 '신기교'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바로 그 친구놈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20년을 왔다갔다 한 다리 이름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작 일주일 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 치고는 너무 말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선언'이란 것을 해놓으면 당분간 나는 라이딩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겠지. 본 것도 들은 것도 많은 친구는, 자신이 쓸 줄도 그릴 줄도 심지어는 찍을 줄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나도 공감한다. 경험을 세세히 기록해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큰지를. 그것을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래서 친구와 함께 달리면서 그 아름다운 감정을 전언하려고 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친구와 그 아름답다는 팔당댐을 찾기로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의 기나긴 라이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맞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