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을 사랑했다. 고즈넉한 골목길 곳곳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가게들을 좋아했었다. 커피 리브레, 이상, 히레 카레, 피노키오까지... 하지만 수년 만에 다시 찾은 연남동은 내가 알던 그 동네가 아니었다. 힙한 카페와 펍들로 가득한 별천지로 바뀌어 있었다. 속상하고 아쉬웠다. 하지만 변화란 모름지가 사람들의 욕망을 따라 흐르는 것 아닌가. 다행히도 새롭게 단장된 일명 연트럴 파크는 내 맘에 속 들었다. 좁지만 잘 정돈된 그 길의 끝까지 산책을 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길의 시작점에 '제주맥주'의 팝업 스토어가 있었다. 2018년의 일이다.
서울시 제주도 연남동...
누구 아이디언지 기가 막히다. 서울과 제주, 그리고 가장 힙한 동네 연남동을 물흐르듯 연결시켰다. 제주란 컨셉은 강력하다. 이보다 청량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다시 있을까 싶다. 그래서 물 하면 삼다수가 떠오르고, 자연주의 화장품 하면 '이니스프리'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새로운 수제 맥주는 브랜드명을 아예 '제주'로 정해버렸다. 그래서 이를 상징하는 브랜드 컬러도 제주도의 '푸른' 빛일까? 2018년의 이 작은 탄생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3주 남짓한 행사에 5만 5천 명이 다녀갔다. 평일 하루 1000잔, 주말에는 2000잔이 팔려 나갔다. 인근 피자 가게도 냉장고도 제주 맥주가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 제주 맥주를 만났다.
일상에서의 작은 여유...
제주 맥주가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치다.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 이 단어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맥주 구매 여부와 상관없이 '비어 피크닉' 세트를 대여하는가 하면, '제주 맥주 한달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비용과 관련 물품을 전액 지원했다. 최근 진행한 '제주 맥주 나만의 캠핑카'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캠핑 용품과 함께 차를 통째로 대절해준다. 마시는 맥주를 넘어 '문화'로 소비되기를 바라는 전략은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다. 제주 맥주 한달 살기에는 60만 명이 몰려들었고, 나만의 캠핑카는 경쟁률만 5000대 1에 달했다. 그리고 이런 호응의 중심에 다름아닌 MZ 세대가 있었다.
맥주를 팔지 말고 문화를 팔아라...
이것이 제주 맥주의 브랜딩을 성공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맥주 시장은 치열하다. 규모의 경쟁으로는 배겨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제주에서 살아보는 건, 캠핑을 즐기는 건 마시는 맥주가 아닌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다. 일상의 작은 여유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탁월한 맥주 맛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여겨지는)한 섬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여유다. 그러니 제주맥주처럼 '제품'을 팔지 말고 '욕구'를 팔자. 컨셉이 명확할수록 이를 담아낼 이벤트와 프로모션 역시 선명해진다. 심지어 모델 없는 TV 광고까지 가능해진다. 우리가 팔고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요? 제품과 서비스 이상의 그 무엇을 발굴하고 전달하는게 바로 브랜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