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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스텝'은 어떻게 9쇄를 찍을 수 있었을까?


스몰 스텝이 9쇄를 찍었다. 책이 나온지 3년 하고도 반이 지났으니 일종의 스테디셀러가 된 셈이다. 엄청난 판매량은 아니지만 꾸준하게 팔린다. 판매지수로만 보면 발행 초기보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이다. 그래봐야 석달 간 정산되는 금액은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궁금해진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에 여전히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의 소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잣대는 트렌드이다. 하지만 트렌드보다 좀 더 오래 작동하는 선택의 기준이 있는데 그걸 우리는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나는 스몰 스텝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러한 시대정신에 운 좋게 올라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 정신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민 '다양성'이다.


이제 우리고 먹고 살 만해졌다. 그래서인지 남들 다하는 것, 다 먹는 것보다는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살리는데 더 큰 관심이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가 간판 없는 가게의 등장이다. 알음 알음 아는 사람만 모여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장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굳이 간판을 내걸지 않는다. 그리고 고객들은 그런 기준이 힙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로 파리바게뜨보다 동네 빵집이 사랑받는다. 나는 이러한 선택의 가장 큰 이유가 '다양성'에 있다고 믿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하나의 결승점을 둔 100미터 달리기 같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 결승점에 있는 상품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자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나의 점에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결승점이 하나가 아니라는 자각이 바로 다양성이다. 이것을 요즘 트렌드로 말하자면 '나다운' 삶에 대한 추구로 설명할 수 있다. 나다움은 곧 자신의 개성과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살겠다는 자각이다.


왜 사람들은 '나는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것일까? 치열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 또 하나의 대안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등장은 이러한 트렌드에 불을 질렀다. 더 이상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선택에 좌우되지 않는 독립적 선택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다면 그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도 쉬워진다.


트레바리라는 독서 모임은 이런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고 있다. 무신사나 W 컨셉 같은 온라인 쇼핑몰이 흥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누가 썼느냐가 중요한 시대에 내가 스몰 스텝을 썼다면 지금과 같은 호응을 얻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평범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전하는 지식과 정보, 라이프 스타일에 오히려 열광한다. 하나의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큰 상징적인 변화가 TV와 공중파 방송의 몰락?이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를 보지 않는다. 자신의 관심과 기호를 따라 밥 먹을 때도 유튜브 방송을 본다. 그런데 그렇게 소비되는 유튜버들은 학력이나 스펙에 구애받지 않는다. 고졸 출신도, 할머니도, 주부도, 심지어 백수도 스타가 되고 돈을 버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성공을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오히려 그들처럼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시대 정신이란 좀 더 오래 유지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는 말이다. 나만 아는 가게에서 발견한 힙한 메뉴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는 사람은 어떤 욕구를 가진 것일까? 오늘의 집에 자신의 인테리어 솜씨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가 비슷한 욕구를 가진 것은 아닐까? 이런 시대의 욕구를 읽는 작업이 마케터, 브랜더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다. 일종의 보물찾기와 같은 희열을 준다. 내가 지금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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