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가까운 회사 근처를 걸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동네는 요즘 가장 핫하다는 성수동입니다. 수년 전에도 이 근처에서 일을 했었는데 공유 오피스 입점 때문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이 동네는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지난 회사에서 일본으로 출장을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신주쿠 인근에 호텔이 있었는데 근처 골목길에서 그림 같은 가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보았던 풍경을 성수동에서 자주 만납니다. 개인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 카페와 음식점, 가게들,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운 젊은 친구?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과연 지금의 성수동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그리고 5년이 지나도 지금의 모습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하거든요. 초창기 언론이나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가게가 한산한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해지네요. 제 눈엔 많은 가게들이 비슷비슷해 보였거든요.
트렌디한 가게일수록 트렌드를 더 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트렌드를 이길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예를 들어 특유의 패턴으로 유명한 패브릭 브랜드 '키티버니포니'는 10여 년 전 만났을 때보다 더욱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패턴으로 인정을 받아 대기업과도 여러 번 콜라보를 진행했더라구요.
성수동 가게들을 채우는 손님들은 저마다 자신의 얼굴을 스마트폰에 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많은 가게들이 풍경처럼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이상의 그 무엇을 갖고 있는 가게는 얼마다 되는지 조금 의심이 갑니다. 적어도 저는 아직 그런 가게를 만나지 못했거든요.(추천 부탁드려요)
저는 항상 이야깃거리를 찾습니다. 그냥 예쁜 카페나 음식점 이상의 스토리를 더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곳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답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진짜일수록 '카피본'들이 생겨납니다. 10년 전 키티버니포니는 자신의 패턴을 무단으로 도용하는 업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거든요.
진짜는 필연적으로 복사본을 만들어냅니다. 진짜는 그 복사본을 뛰어넘기 위해 또 다른 변신을 끊임없이 시도하구요. 거기서부터 따라잡을 수 없는 노하우에 세월의 힘이 더해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시간은 걸립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시간입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성수동 꽃밭이, 여기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과실과 풍경으로 가득해지길 간절히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