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남보다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남보다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래야만 글에 힘이 실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좋은 브랜더란, 마케터란 어떤 사람들일까? 그건 아마도 오래도록 사랑받거나 이제 막 뜨기 시작한, 다양한 브랜드에 관한 정보를 끊임없이 찾는 사람 아닐까? 그래야만 그 속에 숨은 트렌드, 즉 사람들의 욕망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마치 김정호가 지도를 그리기 위해 금강산과 백두산을 올랐던 것처럼.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제는 회사 근처를 지나가다 알록달록한 문양의 벽? 앞에 사람들이 줄 지어 서 있는 걸 보았다. 그 벽엔 '서울 앵무새'라는 단어가 영어로 쓰여 있었다. 입구만 봐서는 뭐하는 곳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회사로 돌아와서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알았다. 그곳이 요즘 가장 핫한 베이커리 카페라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알 길이 없는 건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감수성이다. 어찌 보면 촌스럽기까지 한 카페 입구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 그 속마음을 말이다.
예전에는 거대한 트렌드라는 게 있었다. 유행은 빨리 지나가지 않았고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오렌지족들은 머리를 물들였고 좀 논다는 형아들은 롤러 스케트장을 찾았다. 드라마 하나가 뜨면 온 국민의 절반 이상이 보았고, 최동원이나 선동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국민도 많지 않았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욕하면서도 수긍하는게 우리 세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띄는 커다란 유행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600만의 MZ 세대가 있다면 600만 개의 유행이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무리수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변화의 족적을 좇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매일 아침 스무 개 이상의 뉴스, 유튜브, 블로그 등 다양한 SNS 채널을 찾아다닌다. 경제, 경영 관련 신간과 스테디 셀러의 목차를 살핀다. 미팅이라도 있는 날이면 근처의 힙하고 핫하다는 카페와 맛집을 직접 방문하려 애쓴다. 그럼에도 이 벅찬 작업을 그만두 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는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인사이트를 찾는 일이 마치 어린 시절의 보물찾기처럼 재밌다. 왜 사람들은 '김 부장 이야기'라는 책에 열광하는 것일까. 읽어 보면 뻔한 내용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이유는 무얼까? 맛은 그냥저냥인데 사람들이 몰리는 그 맛집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궁금함과 호기심은 오히려 20대 때보다 더 크고 더 뜨겁다. 낙망과 희열이 교차하는 작업이지만 멈출 수 없다.
내가 꿈 꾸는 일은 '숨은 욕망의 대동여지도'를 완성하는 일이다. 커버낫, 키에린, 도원, 피치스, 올버즈, 우영미, 빠레뜨한남... 요즘 뜨는 브랜드들 속에 숨은 사람들의 속삭임을 캐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정보를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아마도 그들은 나만큼의 시간을 들여 정보를 수집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울 테니까. 이렇게 노쇄한 감각을 가지고 과연 그런 힙한 트렌드의 흔적을 좇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힘든 일인건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일이 무엇보다 재미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