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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딩 (2) - 지금 기록하라

7년 째 일기를 쓰고 있다. 조그만 노트로 시작해 지금은 노션에 쓴다. 일기 내용은 간촐하다. 세 줄만 쓴다. 첫 줄에는 그 날 가장 행복했던 일을, 둘째 줄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쓴다. 마지막 줄은 그 날의 각오로 마무리한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는 이른바 스몰 스텝으로 확장되었다. 내게 힘을 주는 작은 실천들을 반복하고 그 경험을 기록으로 옮겼다. 그 내용들이 그 즈음 막 시작한 브런치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기 시작했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내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 이유가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기록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전문지의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그 달의 주제가 정해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해당 분야의 책을 찾아 읽는 일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생각이 비슷하거나 인사이트를 주는 작가들을 하나 둘씩 골라내곤 했다. 다른 방법으로 적당한 인터뷰이를 찾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교류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은 그 과정을 생략하게 해주었다.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필터링을 거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권의 책은 저자에 대한 '기록'이다. 기록은 여왕벌이 일벌을 모으기 위한 페로몬 같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가능성을 발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브랜딩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왔는지를 알려야만 비로소 팔릴 수 있다. 다행스러운 일은 한 개인이 자신의 존재와 역량을 알리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블로그도 있고, 페이스북도 있고, 유튜브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다양한 채널들을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바로 기록이라는 점이다. 기록한 내용이 많을수록 컨텐츠의 내용도 풍성해진다. 그래서 브랜드가 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차별화 요소를 기록으로 남긴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이 과정이 다름아닌 브랜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록해야 할까? 나는 독립 서점에서 우연히 두 권의 책을 샀다. 한 권은 카레에 관한 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양말에 관한 책이었다. 내용인즉슨 이랬다. 카레를 좋아하는 어떤 디자이너는 1년에 364일 동안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연차를 내어 일본 도쿄의 카레집 스무 군데를 다녀온 뒤 책을 썼다. 다른 한 권은 양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의 모든 양말을 수집한 내용을 쓴 책이었다. 그런데 이 양말로 할 수 있는 얘기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독립서점이 익숙치 않았음에도 그 두 권의 책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이렇게 개성 넘치고 취향이 분명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기록은 대단치 않은, 소소한 것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대신 진정성을 가진 축적이어야 한다.


물론 그 기록이 꼭 글일 필요는 없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단 그 사진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일관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때 시장을 들었다 놓았던 레드망고의 대표는 해외 여행을 갈 때마다 건물 벽과 길바닥에 적힌 낙서 사진을 찍어오곤 했다. 남들이 다 찍는 건물과 풍경이 아닌 낙서를 찍은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남다름'이 그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사진이 아닌 영상도 좋은 방법이다. 요즘 가장 핫한 창작 집단?인 모 베러 웍스는 자신들의 프로젝트 전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올렸다. 자칫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할 법한 다양한 고민과 아이디어들을 가감없이 실시간으로 영상을 통해 전했다. 그리고 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진정한 팬덤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자신을 브랜딩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자신을 판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만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기록해 보자.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나만의 개성, 취향, 철학, 가치관을 쌓아가는 일이다. 이것을 잘 정리한 것을 우리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라고 부른다. 제품과 서비스에도 그것들만의 정체성이 있다.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 없이 나를 '브랜딩'한다는 것은 욕심이며 요원한 일이다. 나를 기록하자. 오늘 만나고 내일 경험해도 여전히 설레는 대상을 찾자. 그것은 카레일 수도 있고 양말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소주병의 두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되고 축적되면 반드시 어떤 일이 생기고 만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브랜딩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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