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승무원 시절, 내 주된 고민은 오직 ‘그녀들의 마음 사로잡기’였다. 매일 함께 비행하는 선배들이 바뀌는 업무환경은 장단점이 있었다. 보기 싫은 사람을 다음날 또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장점이었고, 단점은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니 매 비행을 앞두고 마음을 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승객과 승무원 모두 편안한 비행이 되려면, 승무원 간의 팀워크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말은 나에게 막내인 내가 선배들의 성향을 잘 맞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들렸다.
오늘의 멤버가 불안하다 싶을 때, 나는 먼저 간식을 준비했다. 젤리, 과자, 음료, 빵 등을 사서 비행 전에 나누었는데 소소한 것을 나누어도 효과가 꽤 좋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시작도 전에 후배에게 무언가를 받고 시작한다는 부채의식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간식을 주면 까칠하던 선배의 태도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하지만 여기서 방심은 금물이다. 먹을 것 하나로 태도가 바뀌면 모든 직장인들의 가방은 간식으로 가득 찼을 테니까.
두 번째 전략은 대화로 들어간다. 처음 만난 사이이니 상대방의 관심사는 모른다. 다짜고짜 호구조사를 하거나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다. 대화 주제는 ‘상대방이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자랑거리는 네 가지 중 하나다. 남편 혹은 남자친구, 자녀, 반려동물, 최근에 다녀온 여행이다. 그렇기에 첫 대화의 물꼬를 틀 때, 이 네 가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질문으로 유도한다. 나의 경우에는 “쉬는 날 (혹은 주말)에 뭐 하셨어요?”를 자주 활용하곤 한다. 그러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그냥 집에서 남편이랑 요리해 먹었어요.” 혹은 “저는 애기가 있어서 애기랑 에버랜드 다녀왔어요.” 와 같은 정보성 답변을 한다. 만약 그게 잘 되지 않는다면, 슬쩍 보이는 휴대폰 배경화면 사진이나 가방에 달린 키링을 통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이때, 핵심은 상대가 나에게 먼저 준 정보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며 그 대화는 내가 아닌, ‘상대의 자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도 통하지 않는가? 그럴 때는 향기 칭찬으로 넘어간다. “선배님께 좋은 향기가 나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다. 내 몸에 뿌리는 향수는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나타낸다. 그렇기에 누구나 향수를 정할 때는 나를 각인시키고 싶은 향으로 고심해서 정한다. 따라서 향기를 칭찬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센스를 칭찬한다는 의미이기에 이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먼저 향기를 칭찬하고, 향수의 정보를 묻고, 주로 어떤 향기를 좋아하는지, 추천해 줄 만한 브랜드가 있는지, 좋았던 향에 대한 추억을 서로 공유하다 보면 나에게 조금은 마음이 열린 선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행동적 측면에서도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대접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무리한 과잉의전은 진정성이 없어 보이고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항상 ‘나보다 당신이 먼저’, ‘나는 당신을 위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몸과 마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상대가 잠은 잘 잤는지, 배가 고프지는 않은지 걱정하는 척이라도 한다. 힘든 일을 마치고 오면 물이라도 한잔 건넨다. TV프로그램 <나는 솔로>에 나오는 것처럼 구애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강아지 같은 눈빛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찾고 싶다는 AI 비서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 이게 어렵다면, 상대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상대가 다른 선배나 손님에게 하는 태도를 보면 본인은 타인에게 어떤 식의 대우를 받고 싶은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의전에 자신이 없다면 상대의 행동이나 말투를 관찰하고 따라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기’도 스킬이다. 이러한 전략을 모두 사용했는데도 여전히 까다롭게 구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그럴 때는 나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게 아니라, 상대방은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의 성향을 맞추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저자세로 다가가 애걸복걸할 게 아니라, 시간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의 중심을 지켜야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승무원은 매년 수백 명의 선배, 수천 명의 승객을 만나야 한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다 보니 대인관계 전략을 하나씩 추가하게 되었다. 매번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이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곁을 전혀 내어주지 않던 사람과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게 될 때, 퀘스트를 깬 것처럼 짜릿한 성취감을 느낀다. 그럴 때, 승무원이 나에게 천직인가 착각도 들고 이 직업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얻었다는 기분도 든다. 앞으로도 나를 기다리는 까다로운 퀘스트가 있겠지만, 나의 마음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상대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