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선을 바꾼 사람들

라디오 콘텐츠 만들기

by 리베르테

두 달 전 들었던 라디오 콘텐츠 만들기 수업을 다시 듣고 있다. 편집 프로그램 ‘오다시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에 이번에는 확실히 익히고 싶어서다. 지난번에는 자유 주제로 녹음했지만, 이번에는 세종의 명소를 소재로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해 교통방송 송출에 도전하는 것이 목표다. 무엇보다 수업마다 주어지는 과제가 있어, 원하든 원치 않든 자연스럽게 도전하게 된다는 점이 나로서는 반갑다.

첫 수업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다른 수업에서는 곧장 강의가 진행되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각자 왜 이 수업을 듣게 되었는지 발표해야 했다. 이번 수업에서 눈에 띈 점은 수강생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것이었다.


한 분은 현재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최근 번아웃을 겪으며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던 중 미용실을 찾은 손님의 권유로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쑥스러워 직접 자기소개를 하지 못했지만, 두 시간을 달려와 수업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강사님이 대신 전해주셨다. 퇴직 후 지나온 삶을 글과 목소리로 남기고 싶어 왔다는 분도 있었고, 문학을 사랑해 꾸준히 글을 써왔다고 소개한 분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교직에서 명예퇴직한 뒤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이 수업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는 분까지. 첫 시간은 조촐하지만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오늘은 각자 준비한 콘텐츠의 오프닝 시나리오를 배경음악과 함께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오프닝 멘트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강사님은 “사람들을 단번에 사로잡는 오프닝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아무리 AI가 원고를 대신 써줄 수 있다고 해도, 그 안에 나의 이야기를 담아야 청취자를 끌어당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중 한 분의 오프닝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어젯밤은 절기 백로, 에어컨 없이도 잘 주무셨나요?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 시기에는 밤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히곤 합니다. 말 그대로 제법 선선해진 밤이죠. 잘 익어가는 우리의 인생을 위한 프로그램,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생로병사’ 월요일 순서 문을 열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여운이 긴 멘트였다. 각자 발표를 끝내고 오프닝 시나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한 뒤, 콘텐츠의 성격에 맞는 본문과 클로징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유심히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살피게 되었다. 오프닝을 낭독할 때의 눈빛, 글에 담긴 온기, 그리고 목소리의 울림이 이전보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특히 수업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볼펜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본문과 클로장 시나리오를 종이에 빼곡히 적어 내려가는 수강생의 뒷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동선을 바꾼 사람들’의 뒷모습이었다. 아직 서툴지만, 분명히 다른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두 달 전 같은 수업 시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았다. 그때는 오다시티 프로그램만 익히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른 것을 배우고 있었다. 목소리에 담아내는 진심이 기술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용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끔은 수업에 나오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다. 하지만 함께 수업받는 그분들처럼, 나 역시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도전을 선택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미용실 사장님이 번아웃 이후 의미를 찾아 이곳에 왔듯이, 나도 단순히 편집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나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진짜 이유였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며 반복된 일상을 이어가던 이들이 스스로를 낯선 환경으로 이끌었듯, 나 또한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 이곳으로 향한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한 분이 말을 걸어주셨다. "목소리가 라디오 진행을 해본 사람처럼 편안하네요. 나도 처음엔 겁이 많이 났는데, 함께 하니까 용기가 나요."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각자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을 깨워보고 싶은 마음, 결국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모인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냉만둣국, 낯선 맛의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