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달리기

by 리베르테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애매하다. 구름이 잔뜩 끼어있지만,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있다. 격일로 30분 달리는데 오늘이 달리는 날이다.


운동복을 입고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고민했다. 우산을 들고 나갈까?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비가 오면 그냥 맞으며 달리자.'


사실 나는 달리기와 좀처럼 친해지지 못한다.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힘겹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한 이유는 허리 통증 때문이었다. 허리가 아팠던 친구가 달리기하면서 통증이 사라졌다고 내게 권했고, 반신반의하면서도 병원 치료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저 습관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습관이 되었다고 해서 달리기가 쉬운 건 아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숨이 차오르고, 가슴은 답답해지며, 등줄기에는 땀이 흐른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그렇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42.195km를 달려내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굳이 식구들이다. 곁에서 나란히 뛰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내 옆에서 함께 달려주는 듯한 힘이 느껴진다.


마침내 우산 없이 집을 나섰다. 오늘 예상한 코스는 두 시간 거리다. 30분은 달리고, 나머지는 빠르게 걸으며 산을 가로질러 돌아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비가 오니, 천변길만 따라 달리고 걷기로 했다. 집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래전 비를 맞으며 달렸던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느꼈던 시원함과 상쾌함이 선명하다. '언제 다시 한번 비를 맞으며 달려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듯했다.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제법 굵어졌다. 평소 같으면 건물 처마 밑으로 피했을 텐데, 오늘은 그대로 뛰어갔다. 여전히 숨은 차고 다리는 무겁지만, 빗물이 몸을 식혀줘서인지 평소보다 덜 힘든 느낌이었다.


달리다가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보낸 겨울 이야기다.

그곳에 있을 때 정말 신기했던 게, 비나 눈이 와도 우산을 쓰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도 그냥 맞고, 눈도 맞으며 걸었다. 한국이었다면 그 정도 눈과 비에 우산을 펼쳐 들었을 텐데 말이다.


처음엔 단순히 자가용 이용이 많아서 비를 맞는 시간이 짧아서 그런가 싶었다. 아니면 우산보다는 모자나 후드 달린 옷이 더 실용적이어서일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날씨를 거부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비는 피해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그냥 자연의 일부로 말이다.


오늘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렸다. 처음에는 축축함이 거북했지만 몇 분 지나니 오히려 시원하고 후련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온갖 생각, 미래에 대한 걱정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개운했다.


샤워하면서 생각했다. 이런 작은 일탈이 왜 이렇게 기분 좋은 걸까. 어쩌면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게 아닐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 튀어 보이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오늘 비를 맞으며 달리는 30분 동안, 그런 생각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그냥 나였다. 비를 맞고 싶어서 우산을 두고 나온, 솔직한 나 말이다.


격일로 하는 30분 달리기. 여전히 숨이 차고 힘들다. 그래도 오늘부터는 달리기가 단순히 힘든 운동이 아니라, 나에게 의미 있는 습관으로 자리 잡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가끔, 우산을 두고 나서는 용기도 내보려 한다. 달리기에서든, 삶에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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