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기꺼이
오늘 오후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금 가고 있어. 오늘 저녁으로 팥죽 끓여줘!"
별것 아닌 말인데 마음이 따뜻해진다. 친구는 늘 이렇다. 밥이나 팥죽을 끓여 달라는 짧은 말 속에 격식도 없고, 미안함도 없다. 그저 편안함만 있다. 나는 친구의 솔직함이 좋다.
집에 팥은 없고 녹두만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친구가 녹두죽을 더 좋아하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죽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친구는 팥죽이든, 녹두죽이든, 콩죽이든 늘 두 그릇은 거뜬히 비워낸다.
“그렇게 맛있어? 천천히 먹어. 남은 건 다 싸줄게.” 내 말에 친구는 씩 웃으며 숟가락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내가 만든 음식을
기쁘게 먹어주는 순간만큼 요리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녹두죽을 차리면서 얼마 전에 담근 하얀 열무 물김치를 꺼냈다. 친구가 한 숟가락 떠먹더니 "이거 진짜 시원하다. 맛있어!"하더니 판매해도 되겠다고 했다.
명절이 되면 나는 유난히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는 그런 내 마음을 알고는 "명절 다음 날 우리 집에 마실 와. 친정 간다고 생각하고." 친구의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 친구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직접 만든 티 시럽과 흑 밀로 구운 천연 발효 빵,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블루아이스 나무까지.
“오전에 힐링 클래스 수업 마치고 급히 농원에 다녀왔어.”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리를 떠올리며 발품을 팔았을 그 마음을.
내가 아는 사람 중, 친구는 가장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친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은 언제나 특별하다. 하지만 그 재능이 경제적 풍요로 이어지지 않아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오늘, 친구가 건네준 선물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성과 시간, 그리고 마음을 담아 만든 것들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저녁을 먹고 돌아가는 친구에게 남은 녹두죽과 열무김치를 싸주었다. "또 올게. 다음엔 뭐 해줄 거야?" 농담처럼 묻는 친구에게 ‘뭐든지 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밥을 먹이는 사이다. 밥 한 끼에 담긴 것은 단순히 음식만이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외로움을 덜어내며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네가 있어 다행이야!"라고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선물을 들고 찾아온 친구. 그 선물보다 더 고마운 것은, 내 삶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