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좋은 오늘
기억은 휘발성이 강해 저장해두지 않으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작은 수첩에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어느새 날아가 버린다.
올해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늘 좋기만 한 것도, 나쁜 날만 있었던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냈다. 행복도 불행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하며 일희일비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유독 설레는 날이 많았다. 그것은 새롭게 시도한 것들이 주는 새로움 덕분이었다.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어 바로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언제 많이 웃었지? 내가 언제 활짝 웃으며 수다쟁이처럼 떠들었지?' 하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카카오에서 시행한 '걸어서 대한민국 한 바퀴 코리아 둘레길' 첼린지에 참여하고, 선정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 구간을 실제로 걷고 있는 듯 이야기하며 설레었다.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설렘도 좋았고,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을 받았을 때의 행복감은 더욱 컸다.
오랜 인연을 이어오는 꽃 학교 사람들과 매월 여행하며 나눈 이야기와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아이들이 단체로 준비한 어버이날 행사는 잊지 못할 우리들의 축제였다.
낯선 곳, 낯선 집에 와서 편안히 지내며 좋아해 주신 굳이 식구들과 보낸 시간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달린 대전 마라톤, 굳이 식구들과 달린 경주 국제 마라톤, 두 번의 내 생애 첫 마라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긴 시간 통화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듣고 싶은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두 아이와의 대화는 꿈속을 거닐 듯 달콤했고,
공주 비해피에서 만난 오현호 작가님과 여러 기수의 굳이 작가님들과의 만남은 더 넒은 시야를 가지게 했다. 한 해 동안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나를 일상 수집가라 자청하는 것은, 살면서 지나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발견해 수집하듯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발견해 수집하지 않으면 어느새 바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진다. 일상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고 주의를 기울이면 어디서건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것은 늘 내 곁에서 나와 함께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있어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나는 늘 그렇듯 희망, 사랑,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스함에 기대어 날마다 이어갈 생각이다. 물론 더불어 다 함께 잘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 그 태도를 가지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행복한 순간은 처음으로 천연 효모종(르방)을 키워 우리 통밀 발효 빵을 만든 순간이다. 천연발효 빵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르방' 만들기에 성공해 빵을 구웠다. 처음 도전한 천연발효 빵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순간, 입가에 웃음이 환하게 지어졌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제 내가 만든 빵을 마음껏 선물할 수 있어 기쁘고, 우리 밀로 천연 발효종을 사용해 만든 속 편한 식사 빵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어 좋다.
집안 가득 빵 냄새가 퍼진 나른한 오후, 바로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