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베르테 Sep 14. 2024

지금, 안녕하니?

여기까지 참 잘했다! 애썼다!

지난 유월 어느 날, 한때 화사했던 우리들의 날은 막 피고 지는 여름꽃처럼 무구하게 흩어졌다.


“언제까지 출근해?”

“응! 하루만 더 나오면 돼!”


91년 7월 함께 발령을 받은 동기가 하루만 더 출근하면 퇴직이라고 했다. 같은 공간에 근무하면서도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함께 시절을 보냈다는 심리적 의지가 있었다. 갑자기 아쉬운 마음에 이마가 서늘해졌다. 

“이제 어떻게 지낼 생각이야?”

“모르겠어. 아직은 무엇을 하고 싶거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막상 끝이라 하니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허전하네. 그냥 계란 후라이처럼 납작 엎드려 있을 생각이야. 그러다 심심하면 후라이의 꿈처럼 날아

오르지 뭐”

“그래. 계란 후라이 같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있다가, 훨훨 날고 싶을 때 껍질 깨고 나와 물결 따라 흘러가면 되지 뭐”

친구와 이야기는 가볍기도 했다가 무겁기도 하면서 악뮤의 ‘후라이의 꿈’이라는 노래까지 흘렀다. 


<저 거위도 벽을 넘어 하늘을 날을 거라고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 끝에 꿈을 둔다고

 나는 꾸물꾸물 말고 꿈을 찾으래>


우린 지난 시간의 미세한 무늬를 더듬거리며 손에 잡히는 형체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 같은 시간은 무엇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신규직원 몇 명이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그 모습에는 젊음의 환희가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날아가는 듯 가벼웠다. 느닷없는 친밀감이 올라왔다. 그 친밀감의 근원은 33년 전, 우리들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 시절의 젊음에는 굴복할 수 없는 본태의 생동감이랄까, 깜찍함이랄까 그런 것이 있었다.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저 시기로 다시 가고 싶어?” 

“아니! 절대 아니지!” 

시간과 몸을 다해 살았던 그 시간만으로 족하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나니 우리들의 지난 시간이 화사한 꽃이 되어 피어났다. 설령 그 시절이 우리가 원했던 만큼 살아낸 것이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내 청춘의 꽃송이가 달려있던 시절의 한 모퉁이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상 줄까?”

“생뚱맞기는, 직장에서 준다는 감사패도 극구 거절했는데 상은 무슨?”

“형식적으로 주는 그런 상하고 내가 주는 상은 다르지!”

나의 실없는 말이 웃긴다는 듯 동기는 눈을 흘겼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헌신한 열정과 노력에 감사합니다’ 라고 적힌 의례적인 감사패가 아니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쓴 우리에게 주는, 참 잘했다! 애썼다! 하고 기꺼이 내주는 상.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형식적인 말로 표현되지 않는 진심 가득한 그런 상을 주고 싶었다.


마주 앉아 바라보며 ‘끝까지,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 말하며 소리 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우리, 서로 함께!”하며 동기는 환하게 웃었다. 


우리에게 주는 박수갈채는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생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살아낸 것에 대한 찬사였고, 지나온 시간에 미련 없음이며, 신명이며, 마침내 이루어낼 무언가에 대한 환희였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차에 헤드라이트를 켰다.

구름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 듯, 어둠속에서 보이지 않던 출구가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