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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르테 Sep 20. 2024

미세노센세

혼밥 먹고 싶은 날, 그곳에 갔다

점심시간, 혼자 밥을 먹고 싶었다. “오늘 점심은 직원 식당으로 갈까요?” 하는 동료들의 말을 뒤로한 채 사무실을 나왔다. 직원 식당 앞에 갈지자로 늘어서 있다가 일 처리 하듯 급하게 먹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특히 긴 줄에 속해 서 있는 내가 이물질 같았고, 굳이 그곳에서 다시 그런 느낌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걷다가 어디든 들어갈 참이었다.


 사무실과 멀리 떨어진 탄방역 주변으로 향했다. 그곳은 직장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는 곳이다. 

한낮의 공기는 마치 습식사우나처럼 축축했고, 주르르 등 골짜기에 흐르는 땀이 간지러웠다. 

이왕 나왔으니 건물 사이 좁은 길을 운동 삼아 걸었다. 골목에 사람들이 뒤섞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콘크리트 바닥의 또각또각 하이힐 구두 굽 부딪히는 소리, 운동화를 신은 발소리가 분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리가 멈췄다.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사람들이 사라졌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허기가 몰려왔다.

 

 30분이 넘게 걸었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어디선가 꾸역꾸역 터져 나왔다. 포만감으로 표정은 편안해 보였고 걸음은 느렸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점심을 먹고 싶은 식욕이 돌았다.


 ‘어디로 갈까?’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나에게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싶었다. 목적지를 큰아이와 가 본적 있는 탄방동 성당 근처에 있는 미세노센세로 정했다. 평소에는 줄을 서야 하지만 지금쯤이면 대기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식당에 도착하니 한차례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것 같은 고요함만 있었다. 진한 카레 향이 허기를 자극했다. 


 “몇분이세요?”라고 종업원이 물었다. 


 예전 같으면 햇빛이 환하고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커다란 창가 옆으로 가서 앉았겠지만, 오늘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는 표시 나지 않는 구석 자리가 마음이 편하다. 창가를 지나쳐 주방이 보이는 다찌에 앉았다. 

다찌까지 뜨거운 열이 전해졌다. 크고 둥그런 무쇠 팬 아래로 파란 불꽃이 너울댔다. 그 안에서 카레가 흔들리고 있었다. 젊은 쉐프들의 유니폼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에어컨 바람도 소용없었다. 땀 흘리며 준비한 카레는 음식에 시간과 수고로움이 담긴 최고의 요리였다.


 탁자 위에 소금과 후추, 단무지와 생강이 담겨있는 자그마한 통이 놓여 있었다. 취향껏 덜어 먹으라고 놓인 것이 분명했다. 조그마한 집게로 종지에 얇게 저며진 생강과 새콤한 마늘을 덜었다. 그사이 밥 위에 달걀후라이가 올려 있는 매운맛 카레가 나왔다. 

카레밥 위에 단정하게 놓인 달걀후라이에 후추를 툭툭 뿌리고는 끝부분부터 먹었다. 조금씩 파고들어 가며 먹다 보니 어릴 때 땅에 금을 그리면서 영역을 표시하는 땅따먹기 놀이 생각이 났다. 달걀후라이를 다 먹고는 하얀 쌀밥과 묽은 카레가 한 몸이 되도록 섞었다.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동화되는 순간이었다. 천천히 다시 한번 더 섞었다. 입에 대자 뜨거웠다. 후후 불어가며 뜨거운 맛을 보았다.


 미세노센세는 카레밥 위에 달걀후라이, 새우튀김, 고로켓 등 토핑을 취향껏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테이블 몇 개 없는 좁은 공간은 혼자 밥 먹기에 편안하다. 큰 아이와 종종 들러 서로 다른 맛 카레와 새우튀김이나 고로켓 토핑을 얹어 나누어 먹기도 했다. 오늘 함께 있진 않지만, 맞은편에 아이와 함께 앉아 카레를 먹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다. 미세노센세는 점심 한 끼 먹는 곳이기도, 마음속 아이를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카레 국물이 남아있지 않게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접시에 수저 부딪치는 소리가 달그락거렸다. 오늘은 혼자 밥 먹은 날. 더위 탓도 사람 탓도 아니었다. 그냥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과 맛있는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올려다본 하늘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랬고.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여기저기 엉켜있었다.


 몇 개의 건널목을 건너고 교차로를 지났다, “눈부신 하루의 대열에 낄 수 있는 것은 회사에 정시라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한 작가 이시다 센의 표현처럼 나는 다시 정시라는 약속의 대열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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