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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르테 Sep 25. 2024

우리집 대호(大虎)호야!

나의 귀한 보물

남편은 아이를 한 명만 낳아 잘 기르자 했지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열 명이라도 낳아 축구단을 꾸리고 싶을 만큼 아이를 좋아했다. 남편은 젊었을 적에 조카들이 빨리 군대 갔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을 유난히 귀찮아했다. 그런 사람 둘이 만나 아이를 한 명 낳고 살기를 10년이 지났을 즈음 40살이 코앞에 오자 덜컥 둘째를 낳고 싶어졌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낳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이 있던 중에 외둥이를 키우고 있는 친한 학교 엄마끼리 무주를 갔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는 왜 아이를 한 명만 낳았을까? 대단한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굳이 안 낳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라도 둘째를 낳자! 하는 결맹 비슷한 것을 나누었다.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고 행동을 같이할 것을 약속하듯이 말이다. 결맹은 열매를 가져와 세 명이 모두 둘째아이를 낳았다.

 

당시 우리는 주말부부였다. 남편은 인천에서 자취하고, 나는 대전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남편이 주말마다 오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 되었다. 둘째를 낳자고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 남편 몰래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사이 결맹 동지들의 둘째 임신 소식이 차례로 들려왔다. 

 

병원에 다닌 지 3개월이 지나 임신이 확실한 그날이 왔다. 첫째를 친한 친구 집에 맡기고 불시에 남편이 있는 인천엘 갔다. 당연히 있겠지, 생각하고 갔는데 그날따라 남편이 서울로 시위를 하러 가고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나에게 무슨 일이 있냐며 묻는 남편의 목소리는 꽤 놀란 것 같았다. 환절기라 옷 몇 가지 챙겨왔다고, 자취방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남편은 의심 없이 믿는 거 같았다. 

 

그렇게 둘째 승기는 007작전을 수행하듯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태어났다, 임신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도 6개월이 될 때까지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와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말했다. 임신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말 한마디 없이 방을 나갔고, 방안에 남은 나는 배 속의 아이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나의 둘째 임신 소식을 듣고 시어머니는 반응이 달랐다. 무척 기뻐하시며 “내가 꾼 꿈이 태몽이 맞네. 꿈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가보니 집채만 한 호랑이가 있어.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는데, 내가 대호야! 하고 내 식구를 부르는 것처럼 부르니 내 품으로 쏙 뛰어 들어오더라. 그러곤 잠이 깨었어” 하셨다. 깨고 나서 생각하니 분명 태몽 같아 좋은 소식이 오려나 보다 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사람에게서 임신 소식을 들었다며 태몽으로 보아서 크게 될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며 기뻐해 주셨다.

 

나는 그 태몽 이야기가 싫지 않았다. 커다란 호랑이라 하니 태몽처럼 그때 태어난 둘째가 호랑이의 강건한 가질, 용맹스러움, 당당함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든든한 마음이 들어 안심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때 태몽 이야기를 해주며 “너는 호랑이 태몽을 꾸고 태어났어. 그건 바로 크게 될 사람이라는 거지! 너는 대호임을 잊지 마!”하면서 “대호야!”라고 불러준다. 그렇게 태몽을 이용한다. 그러면 아이는 씩 웃으며 밝아졌다. 

 

불교에서는 태몽을 태아의 영혼이 깃들이는 꿈이라고 한다. 내가 승기에게 태몽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암시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좌절의 순간, 나는 호랑이의 힘과 용기를 가지고 태어났어! 하면서 새벽 정기를 먹으며 우뚝 선 호랑이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도록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둘째 승기가 호랑이의 용맹스러움을 가지고 세상을 탐험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꿈에 기대어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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