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동기의 본인상
이번주는 월요일 밤부터 대학 과 동기 본인상 소식을 듣고, 다음 날 멀리 장례식장을 오가느라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에너지를 소진했다.
회사 일도 적잖은 토론이 오가며 마음이 불편할 뻔했는데, 친구의 장례식 전후로 회사 일에 대한 스트레스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산 사람들의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게 되어있고, 지나치게 힘쓸 일도 아니었다. 업무 과몰입 모드에서 개인적인 삶의 밸런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과 동기의 부고]
월요일 밤 11시 넘어, 우리 과 동기 L의 부고 소식을 받았다.
소식 전해 준 Y는 L의 고등학교 후배로, 본인도 20년간 연락을 안 했었는데 동문 후배에게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못 가더라도 마음으로 기도해 달라고 했다.
과 친구들과는, 특히 남자 동기들과는 아무런 연락도 안 하고 지내서 연락처도 없을 정도인데, 세월이 흐른 후 접하게 된 소식이 본인상이라니.
사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내가 아는 L은 스물한 살 때 정도에 그쳐있다. 장례식장도 가평이고 비가 많이 온다. 오후에 회의도 있고 저녁엔 언니들과 약속도 있고. 그냥 퇴근하고 가볍게 다녀올 곳이 아니고.
Y와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Y가 마지막 인사 하고 싶다는 말에, 나도 이것저것 재지 말고 다녀와야지 마음을 먹고 회사 반차도 내고 약속도 조정하고 Y를 회사 앞에서 태워 장례식장으로 갔다.
본인상이라는 게, 참 슬프고 허망하다. 본인이 없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부고장을 보고 배우자와 아들 딸이 한 명씩 있구나 정도는 알았고, 가는 길에 Y에게 조금 더 이야기를 들었다.
도착해서 인사하는데, 그 이름들이 나란히 서 있다.
우리가 누구라고 Y가 설명을 하고, 나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든 일이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아내 되시는 분이 담담하게 지난주에 낙상사고였고 뇌출혈이 밖으로 피가 나지 않아 뇌내 손상이 심각해졌다고 했다.
들으면서 계속 눈물 흘리는 나에게, L의 아내는 울지 마세요 저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우시면 어떡해요, 했다. 어떤 이야기들을 조금 더 주고받았는데, 그녀가 "L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외려 위로를 받았다. 이 친구의 30대와 40대를 본 적은 없지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L이 참 좋은 사람과 결혼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한 그녀는 한 시간 뒤, 입관식에서 실신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뒤늦게 온 동기들과 우리는 그녀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오래 있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