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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D-80] 우는 아이는 따로 있다

by 낯선여름

오늘은 엄마가 반차 휴가를 냈어.

그저께부터 열이 나서 힘들어한 동생이 주말에 내내 아프느라 못 간 학원 테스트에 태워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야.

얘는 엄마가 월요일부터 반차 휴가를 내는 것이 얼마나미안한 일인지 모르겠지.

마침 큰 프로젝트를 마치고 이번 달은 비교적 여유가 있으니 사실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휴가도 넉넉하게 남았으니, 까짓것 와주자, 하면서 집에 왔단다.

농구하고 4시까지 오겠다고 연락이 온 건 퇴근 운전중일 때였고.


학원 테스트 끝나고는 그 건물에 있는 맛있는 돈까스 집에서 꼭 먹어야 한다고 졸라서 결국 원하는 세트를 다 먹고, 그거로 나서 후식 배는 따로 있다고 편의점으로 유유히 걸어가더니 죠스바를 두 개 들고 오는 거야. 1+1 이라면서. 정말 네 동생 답지 않니? ㅎㅎ


아플 때면 전화해서 빨리 와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둘째와 반대로,

너는 아파도 엄마 출근하라고, 너는 괜찮다고 얘기하곤 했지. 그럼 엄마는 또 그 말을 믿고, 미안해하면서 출근하곤 했었어.

네가 독감 걸렸을 때도 너를 집에 두고 출근했던 날들이 생각나서 미안해지려고 하네.


첫째와 둘째, 맏이와 막내 차이가 흔히들 이렇다지만,

어려서부터 크게 요구하는 것 없고 의사 표현을 강하게 안 하는 네가 마음에 좀 걸렸어.

둘째는 늘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끈질기게 요구해서 다 얻어내는 반면,

너는 별로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다 괜찮다고 하니까, 몇 번 물어보다가는 그냥 묻히게 되지.

나 닮아서 그러나 싶기도 하고.


엄마도 사회생활하며 그런 편이라서 손해라면 손해를 많이 보긴 하는데, 이게 천성인지 환경적인 영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는 심지어 둘째였는데, 늘 뭔가를 요구해서 받아내는 네 외삼촌이 어려서는 얼마나 얄밉던지. 다 옛날 얘기지만, 외삼촌 방에 침대, 컴퓨터가 다 있고, 엄마방은 한동안 책상과 피아노만 덩그러니 있었단다. 나도 갖고 싶었는데 늘 돈 때문에 싸우는 엄마 아빠 앞에서 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못하겠더라고. 커서 돌아보니 조금 바보 같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ㅎㅎ 종종 외삼촌 하고 단골 안주거리 소재지.


감정은 또 어떻고. 양보하고 배려한답시고, 손해 보는 일들이 종종 있어, 아직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되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려나?


엄마로서 너를 볼 때는 어려서는 의젓한 모습이 고맙다가, 둘째와 비교되면서 이런 점이 안쓰럽기도 하고,

더 큰 지금부터는, 솔직히는, 이제 안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뭐든 더 원하는 사람이 갖게 되는 세상이어서.

너무 욕심만 부려서도 안되고 물러나고 포기하기도 해야 하지만,

정말 원하는 것에는 욕심도 부리고, 요구도 하고, 도움도 요청하면 좋겠어.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참, 오늘, 동생 테스트 보는 시간 동안 근처 약국 구경을 하다가 영양제를 충동 구매했어.

정면에 크게 "수험생"이라고 써 붙인 코너가 있어서 두리번거리니까,

약사인지 판매원인지 구분 안 되는 분이 "아직도" 이거 안 먹여 보셨냐고,

수험생들 진작부터 먹는다고 엄마를 펌프질 하는 거야.

피로회복은 물론이고 뇌세포가 활성화되어 머리가 잘 돌아간다나. ㅋㅋ


피식 웃음이 나왔지.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한번쯤은 속아주고 싶은 날이 있잖아.

그렇게 처음 듣는 이름의 영양제를 엄마도 한 번 사봤다.

너는 부담스럽다고 싫다고 했지만, 방에 두고 나오기 성공.

가끔 너무 답답할 때, 한 번씩 먹어봐. 속아주는 마음으로.


더위가 수그라 들듯 하더니 또 후덥지근하네. 아마 8월 마지막 날까지 이러려나 싶다.

이런 날씨에는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쉬워.

물도 잘 먹고, 영양제도 먹어보고, 가끔 단 것도 먹으면서, 기분 전환 해보길.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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