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선여름 Sep 14. 2024

[수능 D-64] 돈을 좇지 않겠다는 고3

# 엄마의 회사 생활. 엄마는 돈을 좇고 있는 걸까? 아니면 뭐? 

엄마가 퇴근하면 7시가 넘으니, 보통은 너희들은 저녁을 다 먹고 난 후였는데, 

고기가 먹고 싶은 날이었는지, 네가 기다릴 테니 와서 고기 좀 구워달라고 했던 날이야. 


이런 부탁을 잘 안 하니까 엄마는 또 좋아서 정시에 일어나 퇴근을 했지.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내가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인 것 같아. 

너희들 어렸을 때와 할머니 살아계실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 

지금은 너희가 커서 여유가 생겨서 이런 것이겠지만, 종종 이 인생의 모순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튼, 고기 많이 구워달라는 너의 요청에 정말 얼마나 많이 구웠는지 몰라. 

(엄마의 아들 사랑은 무릇 고기 굽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 ㅎㅎ) 


오랜만에 함께 저녁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네가 직접 돈을 벌어 생활하게 되면 이런 고기도 맘껏 못 먹겠지, 나는 정말 아껴 살 거야,라는 이야기를 했어. 많이 쓰고 싶으면 더 일해서 벌면 되고, 아니라면 그에 맞게 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월급 액수를 듣고 생각보다 작아서, 조금 더 높여서 생각해도 좋겠다고 말은 했지. 


요즘 대졸 신입 초봉 정도를 평균적으로 생각해서 말한 것인데, 갑자기 생각해 보니, 대기업에 맞춰서 이야기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바로 정정했지. 엄마가 어느 새 엄마 회사나 협력업체 직원분들만 생각하고 평균보다 많이 버는 사람들 기준으로 이야기했는데, 평균의 함정일 수도 있다고. 

아들인 네가 더 많이 버는 직종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네가 문득 "엄마, 나는 돈을 좇지는 않을 거야"라는 말을 했어. 

엄마도 예전에 다른 일, 다른 공부 하고 싶었는데 결국 돈을 벌고자 대기업에 간 것이냐고 물었지. 음... 돈만을 생각해서 회사에 입사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국 그런 것인가? 여러 생각을 하게 되네.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대학 졸업 때까지 다른 진로를 구체적으로 준비해놓지 않았고, 대학 졸업 즈음에 삼촌도 아직 학생이었으니 나라도 먼저 취업을 해서 부모님의 걱정을 덜고 싶은 마음에 일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쭉 이렇게 월급 받는 회사원으로 살고 있네. 


너는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엄마는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었어. 내 꿈은 정말 뭐였더라?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나는 얼마의 노력을 해보았던가, 하고 말이야. 


너는 이내 "회사를 다니는 사람 중에는 엄마가 좋아 보여. 큰 회사 다니는데도 7시 정도엔 와서 이렇게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엄마는 회사를 즐겁게 다니잖아. 뭐도 많이 하고. 대학생처럼" 

"엄마가 오래 다녀서 익숙해져서 그렇게 된 거야? 아니면 엄마네 회사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다녀? 하고 물었지. 


엄마는 엄마가 오래 다녀서인 것도 일견 맞는데, 요즘 우리 팀 신입들도 즐겁고 치열하게 다니고 있는 걸 보면 

그동안 회사 분위기나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엄마가 일하는 부서가 홈페이지나 앱 관련 일을 하니 컴공이나 디자인 전공한 친구들도 많은 영향도 있는 것 같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돈을 좇지는 않아도, 돈을 많이 벌지는 않아도, 

좋은 사람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이게, 참, 어려운 거거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나가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