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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Sep 14. 2024

[수능 D-63] 서울 우유부터 저지방 우유까지

# 우유 이름에도 학교 서열화가 # 엄마가 회사 안 다니면 좋겠어

엄마가 3년 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려고 하니 고민이 많았어. 

너희가 아기 때 휴직을 한 것도 아니었고, 엄마 나이도 많은 상태이고, 

전문적인 기술이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돌아가도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상황. 


돌봐줄 할머니도 이제 안 계시고, 그때는 너희가 중학생, 초등학생 이랬으니 돌봐 줄 이모님을 구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 너희들은 아들들이잖니 ㅎㅎ 

너희들이 알아서 학교도 가고, 밥도 먹고, 학원도 가고 알아서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었고, 

예전 동네처럼 엄마가 친한 아주머니들이 많으면, 급할 때 도움도 받을 수 있겠지만, 이사 와서는 너희보다 엄마가 적응을 잘 못했는지 맘 편히 왕래하는 성인 이웃이 하나도 없어서 그게 걱정이었어. 


중학생이던 네가 나에게 뭐라고 말했냐면, 마침 우유를 따르면서, 

"엄마,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좋겠어.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나는 서울대를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회사를 가면 우유 이름으로 하면 건국 우유.. 무슨 우유 하다가... 저지방 우유까지 갈 수도 있어" 


그 말이 아마 그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쓰는 유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갑자기 그 말을 들으니 웃기면서도 너무 슬픈 거야. 우유를 보면서도 학교 서열화를 생각하는 우리나라, 우리 학생들이라니. 


그래서 엄마가 이렇게 답했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가 회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네가 서울대 혹은 소위 말하는 좋은 학교를 가는 것은, 너에게 좋은 일이야. 엄마도 잠시 기쁘겠지만, 그게 끝은 아니니까. 거꾸로 혹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해도 엄마에게는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닐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회사 그만뒀는데 네가 서울대 못 가면 네가 엄마한테 얼마나 미안하겠니? ㅎㅎ 

엄마도 괜히 억울한 생각에 너를 원망할지도 몰라. 

엄마는 돈도 벌고 사회생활 하면서, 네가 언젠가 필요할 때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지원해 줄 수 있는 힘을 키울게" 


요즘 가끔 이때의 우리의 대화가 생각 나. 

네가 고3이니까 주변에서 종종 묻거든. 

공부는 어느 정도 하냐? 어느 학교를 가고 싶어 하냐? 

의대 정원 늘었다는데 의대 가보는 것 어떻냐? 


그러면 엄마는 질문한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답을 하기는 해. 

의대는 성적은 차치하고라도 아이의 장래 희망과 관련이 없다. 

오히려 그 의대 정원 때문에 n수생들 다 들어와서 등급 받기 어려울까 걱정이다. 

기대만큼 성적을 내고 있지는 않아서 어떻게 결정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어느새 성적으로 너를 안타까워하는 나를 발견하곤 하지. 

엄마 마음에도 네가 가능하면 좋은 학교 가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나 봐. 

복직할 때 우유 얘기를 하며 쿨하게 말했던 엄마는 어디 가고. 


엄마가 복직하고, 너희들 나름대로 혼자 알아서 학교 가고, 돌아와서 저녁 먹고, 학원 가고 하는 일상을 

잘해 주어서 엄마는 다시 회사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어. 

그 후에 갑작스레 아빠가 회사에서 나와 한동안 쉬기도 했으니, 그때 엄마가 복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심리적으로 모두 조금 압박감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다시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할래. 

너도 나도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 

무슨 우유를 먹으면 어떠냐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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