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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Sep 19. 2024

[수능 D-56] 수능 선물과 요가

# 선물과 요가는 아무 관계없음 # 그냥 엄마의 일기에 가까운 편지 

오늘 출근하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어. 아차 싶었어. 

엄마 친구가 네 수능 얼마 남지 않았다고, 너무 임박해서 주면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추석 즈음해서 보낸 

과일 선물세트 교환권인데, 주소를 기한 내 입력하지 않아서 취소된 것이었어. 


모두 변명이지만, 추석에도 신경 쓸 일이 조금 있었고, 무엇보다 그 선물에는 리본을 꼭 선택해야 하는데, 문구를 적지 않으면 기본 문구로 온다는 거야. (왜 리본 선택 안 함은 없는 것인지 ㅜㅜ) 

기본 문구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와 같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 그냥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것이라서, 

너를 응원하는 문구를 적지 않는다면, 엄마가 활용할 수 있는 문구 같은 것을 넣어서 활용할까 했거든. 


기간이 여유 있다고 생각해서 늦장 부렸는데, 기한이 지나가버려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과일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친구한테 너무 미안해서.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적이 있었는데.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것이다. 


엄마에게 과일 선물세트를 보냈던 친구는 엄마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다닌 Y 이모야.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도 함께 하고, 본고사도 함께 보고, 둘 다 1 지망으로 원하는 학교는 아녔지만 같은 학교에 가게 되어서, 같은 과는 아녔지만 같은 단과대 건물에서 대학 시절도 함께 보내고, 이제 둘 다 청소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서도 이렇게 연락하는 오랜 친구.


너에게는 부담되는 일들의 연속이겠지만, 엄마 친구들은 엄마를 응원하고, 엄마의 아들인 너를 응원하고, 그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하면서도, 또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적잖이 고민하다가 선물도 보내고, 안부도 묻곤 해. 

엄마는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엄마 친구들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아서 거절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친구가 조금 서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다들 결혼을 늦게 하다 보니 엄마 친구들 중에 네가 나이로 2,3 등 정도 하는 것 같아^^ 엄마도 작년에 고3 아이 있는 친구에게, 만나지는 못하고 영양제 같은 것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보낸 것 같아. 뭐라도 선물하면서 응원하고 싶고, 찹쌀떡이나 엿을 보낼 수도 없어서 조금 고민을 했던 것 같아. 


올해 주변에서 보내주는 응원들이나 선물들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뭐가 좋았는지 기억해 놓으면 

내년부터 엄마도 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연휴 끝나고 출근했더니 몇몇 동료가 연휴 잘 지냈냐고 묻더니, 엄마가 답하기도 전에, 고3 엄마가 어떻게 쉴 수 있었겠냐고 답하며 안쓰런 표정을 보내서 속으로 조금 머쓱했어. 고3 엄마라고 뭐 특별한 것도 없고 특별히 힘들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안타깝게 바라보는 걸까. 하지만 이내 엄마는 생각했지. 이 순간을 즐기자, 하고. 같이 약간의 인상을 찌그리며 반응을 하는 거지. 약간의 한숨과 다소 힘든 표정을 지으며. 


오늘 엄마는 회사에서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나고, 착한 후배들 덕분에 치열한 10월 요가 등록도 선착순 접수 성공을 했고, 또 점심 요가에도 참석했단다. 가기 귀찮은데, 막상 가면 가장 뿌듯한 요가 시간. 

연 초에 완전 초급에 가까웠는데 이제 스스로 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돌아오는 길에 요가에 관한 짧은 웹툰을 봤는데, 요가도 꽤나 힘든 운동인데 스포츠라고 하지 않고, 수련이라고 하는 이유는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라 그렇대. 나의 호흡, 나의 동작, 나의 한계에 한걸음 다가가는 행위라고. 그 말에 완벽하게 공감이 되었어. 

오늘 엄마의 수련에서도 정면의 어느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 발을 다른 한 발에 올린 채 중심을 잡는 동작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중심을 잘 잡지 못해 휘청이다 완전히 집중하는 순간 중심을 잡는 경험을 했거든. 


흔들리다가 멈춰지고, 멈춰지면서 고요해진 순간. 

그런 집중의 순간이 너에게도 있었기를.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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