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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2시간전

[수능 D-46] 80세 피아니스트의 연주회

마리아 조앙 피레스 마지막 내한 공연에 대한 소회 

그동안 방관자 엄마였던 것을 반성하며, 

D-100 되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정말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약속이나 회식, 

외출 약속은 따로 하지 않기 였어. 


9월에 팀 회식 한번, 10월에 친한 동료 후배 결혼식 외에는 가능하면 집에 머물 생각이었는데, 

지난 주에 마리아 조앙 피레스라는 포르투갈 피아니스트가 내한했다는 소식을 들었어. 

1944년 생으로 올 해 80세라 아마도 내한공연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기사를 보고, 

남은 공연을 찾아보니 서울에서 한번 더 기회가 있더라고.  


마침, 그 공연장은 자리도 있었고. 

누구에게 말한 것은 아니고 나 혼자의 다짐이긴 했지만, 

이렇게 또 어기게 되네.

'마지막' 이라는 단어만 없었어도, 

내년이나 후년이나 그 언젠가를 기약했을 텐데. 


포르투갈이란 먼 나라에서 이 멀고 먼 한국까지 연주 여행을 온 

80세의 여성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눈앞에서 보고 듣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인사하고 싶었어. 

비슷한 마음을 가진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거든. 


연주만 딱 듣고 오려고 다른 친구들과 약속은 잡지 않았고,

1석 좌석은 2석 나란한 좌석보다는 좌석 사정이 나았는데, 

이미 좋은 좌석은 나가있는 상태라 차라리 제일 앞 줄에서 보자 싶어서 

A구역 1열 1번으로 자리 잡았어. 

제일 첫 줄인데, 피아니스트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보게 되는 좌석으로. 


연주는 인터미션 없이 70분 진행된다고 했고, 앵콜 곡까지 해도 90분 남짓 되었어. 

80세 은빛 머리의 피아니스트는 외관부터 아우라가 남달랐어. 

작고 단단한데,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고 은은했어. 

연주도 강약의 조화가 잘 어우러지면서 물결이 잔잔하게 일다가 파도가 치다가 또 자연스레 잦아드는 

흐름에 나도 모르게 살짝 미간을 거기에 맞게 움직이고 있었단다. 


연주가 끝나고 엄마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거장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고, 

엄마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인사를 하고 들어가면서 가장 마지막엔 엄마에게 또 한 번 눈웃음을 보내주셨단다. 

마치 이전에 아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연주의 감동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너희들은 늘 이해 못 한다고 하지만 ㅎㅎ) 

내 귀가 그 어느 때보다 사치스러워지고, 내 마음이 꽉 찬 것 같은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연주는 그 순간뿐이라, 실황의 느낌은 그 공간에서 유한한 것이라 더 애틋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돼. 


피아노에 온 인생을 다 바친 음악가들은, 저 예술가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싶어서 

엄마는 늘 예술가들에 대한 선망이 있지. 


시간에 따라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 

그런 것만을 추구하고 싶어 져. 

이렇게 멋진 연주를 경험하고 온 날은 더더욱. 


앞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될 너의 시간 앞에도 이런 축복의 시간이 있기를.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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