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그 후의 풍경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대한 흥분과 감동이 가시지 않아.
서점들 바쁘겠다고 예상했지만, 벌써 수상소식 이후 온라인 서점은 작가의 책들이 모두 판매되었대.
언론 매체들이, 또 개개인들이 SNS를 통해 한강 작가 관련 포스팅을 하는 것을 즐겁게 관찰하고 있어.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로, 연예인이나 스포츠 같은 행사 말고,
오로지 책과 작가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나 싶거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길을 걸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대,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고, 책도 요약해 주는 유튜브를 보는 시대잖아.
엄마가 너희들에게 유일하게 안타까운 것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거든.
너희가 부정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스마트폰이 생기고 중학생이 되면서 영영 멀어진 것 같아서 종종 안타까웠어.
지성의 측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긴 호흡의 책을 읽으며 저자와 공감해 보는,
내 반경을 벗어나보는 경험을, 그 순수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면, 속으로 생각했거든.
그렇다고 책을 강제로 읽게 하거나, 책 읽기를 조건으로 걸고 달콤한 것을 해주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어.
그저, 언젠가 마음이 지쳤을 때 일수도 있고, 심심한데 아무것도 하기 어려울 때도 있을 때, 곁에 책이 있기를 바라고, 그 시기가 언젠가 오기를, 너무 늦게 오지 않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학교는, 공교육은 뭐 하는 것인지.
그 어떤 교육보다 필요한 것이 읽고, 쓰고, 스스로 생각해 보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인데.
스스로 긴 텍스트를 읽고, 쓰고, 의견을 발표하는 그런 경험을 교실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이런 모임과 교육에 갈증이 있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모임 플랫폼을 통해 뒤늦게 책을 읽고, 배우고 있는지 알면 놀랄 거야.
한강 작가는 한 때 블랙리스트로 분류되어 있기도 했었대. 역사 인식이 어떤 단체와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고, 또 어떤 책에서 보인 페미니즘 성향을 비판하는 글도 본 적이 있어. 이런 논의조차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 다만 제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사람들이 비판에 참여하고, 댓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남이 요약하고 쓴 글을 토대로 쉽게 댓글 한 줄로 비판하는 것은 비겁하고 부끄러운 일이거든.
마치 긴 대화에서 한 조각만 떼어서 전체를 왜곡하는 그런 행동과 같아.
출판계와 관련 업계에서는 한강 작가 책 판매와 함께, 함께 책 읽기 모임, 해설하는 강의들이 쇄도하고 있어.
이런 현상조차 처음 있는 일이라 참 반갑고 즐거워.
너는 이런 현상에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겠지만,
그 언젠가 너도 읽기를 바라면서 엄마가 벌써 오래전에 네 책장에 꽂아놓은 수십 권의 책들 중에
한강 작가님 책도 서너 권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어떤 영화를, 스포츠 경기를 함께 보고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던 것처럼,
같은 책을 보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수험생인 너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