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아직도 낮에는 반팔을 입었는데, 부쩍 추워졌어.
매 년 수능마다 추웠는데 안 추우려나 했거든.
갑자기 뚝 떨어진 가을 바람이 코 끝에 닿으니, 별 걱정을 다 했다 싶어.
날씨가 추워지니, 일상 생활도 그에 맞게 바뀌어간다.
여름 내내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먹던 엄마 동료들도 따뜻한 아메리카를 먹기 시작하고,
점심 메뉴로는 국물 있는 메뉴가 더 많아졌어.
엄마는 플레이리스트가 바뀌었어.
가을에 듣고 싶은 노래들이 있잖아.
쓸쓸한 노래들. 그리움의 노래들.
어느 날엔가 밤에 잠깐 깨서 네 방에 들어갔더니
창문을 열고 자길래, 창문을 닫고,
조금 두터운 이불을 꺼내 덮어주고 나왔어.
너는 다음날 웃으면서,
"엄마, 엄마가 이불 또 덮어주고 갔어?
나, 일어나 보니 덮고 있는 이불이 세 개나 되잖아" ㅎㅎ
녀석아,
수능 때까지 감기는 안 걸렸으면 하는,
엄마 마음이다.
시를 빗대어 조금 더 멋지게 쓰자면,
짧은 가을날의 엄마의 깊은 마음!
오늘도 화이팅.
가을은 짧아서
- 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내 인생의 결정적인 단 하나를 품고
영원의 시간을 걸어가는
짧은 가을날의
긴 마음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