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화편] 나, 아무 생각 없지 않아

아이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기

by 낯선여름

"엄마, 아까 병원과 전화하는 거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 아이가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대답했어요'라고 하는 건 조금 너무하더라?"


사건은 이렇다.

아이는 일요일에 계단에서 넘어져 코 뼈가 부러져 대학병원 응급실을 다녀왔고, 수술 등을 앞둔 상황이다. 수요일은 고등학교 입학식, 목요일은 정상 등교, 금요일은 재량휴업일이라 실밥 푸는 날은 금요일로 예약을 잡아 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요일인 오늘 오전,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등록했던) 아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는

금요일 진료 예정인 의사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격리에 들어가니 목요일로 진료를 바꾸겠다고 했단다.


입학식 다음날 하루 정상수업하는데 실밥 푼다고 학교를 안갈 수도 없는 것이고, 얼른 해당 대학병원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이미 목요일로 예약이 바꿔져 있다고 한다. 이 예약도 목요일 진료는 이 분 한 분 뿐이고 대기자 있는데 특별히 잡아줬다고 이야기를 한다. 아이 상황상 더 시기를 늦출 수는 없고, 금요일엔 진료 보는 선생님이 없고, 목요일도 이 한 분 뿐이라는 것이다. 읍소할수 밖에 없는 상황인 나는, ‘아이가 학교 가야하는 것을 모르고, 목요일 가능하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가능하면 차라리 수요일인 오늘로 잡아달라. 오늘은 입학식만 잠깐 다녀오니 오후에도 가능하고, 아니면 집이 근처에 있으니 오전인 지금도 가능하다’고 간절히 부탁했다. 수화기 저편에서, ‘그럼 30분 뒤에도 가능하시다는 거죠?’하며, 바로 와보란다.


어른의 경험과 연륜으로 일을 잘 해결했다고 뿌듯해하고 있는데, 아이가 웃으며 전화 내용 중에 '우리 아이가 아무 생각없이 “네”라고 했다'고 말한 부분을 지적 했다. 자기는 '어머니와 한번 상의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상담사와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는 어쩜 그렇게 말하냐고 덧붙이니 더욱 머쓱해졌다. 솔직히 기억은 잘 안 난다. '내가 정말 그랬나? 그렇게 까지 말했나?' 의아했다. 목요일 오전으로 예약이 잡혀있다는 얘기에, 아이가 잘못했구나 싶은 마음과 바로 잡고 싶은 마음에 과장되게 이야기 했나보다. 그렇다해도 꼭 저렇게 얘기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왜 저렇게 이야기 했을까, 곰곰히 나를 되돌아본다.


종종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혹은 '잘 모른다' 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고 있었나보다. 말로는 늘 어린이들도 어른처럼 성숙한 인격체로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해왔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은연 중에 아이들은 덜 성숙하다고, 식견이 좁다고 얕게 보았던 것은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종종 다른 어머니들과 이야기할 때, 특히 아들 키우는 엄마들과 이야기 할 때, 자기 아들의 무지함에 대해 서로 경쟁하듯 놀리는 이야기를 했던 경험이 있다. 아유.. 남자 아이들이란, 이라고 아이들을 치부하는 것은, 우리가 크면서 '여자들이란.. '이라고 들은 숱한 고정관념을 양산하는 것이었음을 오늘에서야 확연히 느낀다.


나이가 더 어리든, 조금 더 컸든, 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생각이 있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그들의 불완전한 부분이 아닐진대, 어른인 나는 종종 실수하고 오해한다. 온전한 인격체로 아이들을 대한다는 것은 단지 아이들 앞에서 친절하게 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 앞에서건 안보이는 곳에서건, 아이들을 어리고 미숙하다고 낮추어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되겠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인격체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주머니에 손 넣고 걷다 넘어져 코뼈가 부러지는 것으로 고등학생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린 우리 큰 아들, 알고보면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은 열 일곱 청소년, 너의고등학교 입학을 온 맘으로 축하한다. 늘 차분하게 자기 의견, 감정을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너를 통해 오늘도 또 하나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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