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게 일터에서 듣는 말. 차별의 언어와 직업의 귀천에 대한 생각.
# Scene 1.
"오늘 무슨 말 들었는지 알아?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한테 수속 카운터를 가리키며
'너 공부 못하면 이런 데서 일한다' 라고 했어"
공항으로 배정된 신입사원 김지수는 종종 입사 동기들과 저녁 회식을 했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입사 동기들과 친해질 수 밖에 없다. 스케줄 근무를 하니 다른 회사 친구들의 출퇴근 시간과 달라 만나기가 힘들고,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터놓고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고객들이 그 날 겪은 불쾌하거나 감동적인 서비스를 글이나 말로 풀어내듯, 서비스 현장의 직원들은 그것을 같이 일하는 직원들끼리 말로 풀어내고 만다. 고객은 왕이므로 왕은 컴플레인 할 수 있지만, 회사의 직원들은 고객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도 침묵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고객을 대하는 일을 해본 적 없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들에게 어떤 요령이라는 것은 아직 쌓이기 전이다. 그저 속상한 일은 소주와 맥주를 곁들여 수다로 날려 보내는 것이다. 그 날 자기가 만난 고객 중, 혹은 선배 중 가장 황당한 경우를 서로 경쟁하듯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살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대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가 않다. 숫자로만 되어 있는 고객의 정보로는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무슨 일을 당해도 대비가 안되어 있는 상황이 많았다.
그 날 들은 최고의 발언은 '이런 데서' 일한다는 비하의 용어였다. 그 말을 들은 직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S 국립대학 출신이었다. 입사 동기들 중에는 절반 이상이 소위 SKY 출신이었다. 물론 SKY 출신이라고 어떤 말을 들어서 안되는 것은 없다. 저런 말은 말하는 사람의 문제이므로 듣는 사람은 한 귀로 흘리면 되는 문제이다. 다만 기분이 몹시 나쁠 뿐이다. 그 직원은 웃으며 "저 S대 나왔거든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했다. 그런들 뭐가 달라졌겠나 싶어서. 하지만 아직도 화가 난다며 맥주를 들이켰다.
김지수는 그를 보며, 기분 나쁜 이유가 S대를 나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말해서 억울해서인가, 아닌 사람은 저 말을 들어도 되나 궁금했다.
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이런 질문은 금기였다. 회식에서의 직장인은 심각해져서는 안되었다.
# Scene 2.
선배 중 빅 마우스라고 불리는 분이 있었다. 대치동에 살고, 아이가 공부를 잘해 영재고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어느 날, 그 선배와 같은 조에 배정이 되어 함께 점심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어려운 선배와 대화를 할 때 대화를 이어가기 좋은 방법은 선배의 장점을 최대한 칭찬하는 것임을 배운 김지수는 '아이가 공부 잘한다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교육을 잘하셨어요?'라는 질문을 꺼냈다. 통했다. 통하다 못해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유치원 때부터 아이를 교육했는지, 직접적으로 아이를 푸쉬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하도록 세뇌시킨 본인의 노하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선배는 직접적으로 이걸 하라고 하지 않고, 길 가다가 벽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공사장에서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 청소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했단다. "저 봐, 공부 안하다가 어른되면 다 저런 일 하는 거야" 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듣고 '알아서'; 공부한 것 같다고, 본인은 전혀 구체적인 플랜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선배와의 점심 이후, 다른 것은 기억이 안나고 저 말만 계속 생각을 맴돌았다. 나의 입사동기가 고객에게 들었다는 저 말을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선배는 자신의 아이에게 쓰고 있다니. 일반화할 수 없겠지만 엄마들이 흔히 아이들에게 하는 말인가 보다. 이런 말을 직접 하거나 들어본 적은 없어도 우리는 미디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접해 본 적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내가 들을 수 있는 곳에 있어서인지 다르게 다가왔다. 이런 차별의 언어를 이렇게 쉽게 아이에게 주입해도 되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성별, 인종, 종교 뿐 아니라 사는 지역, 학력 등의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배웠는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이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인가.
회식 자리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내일 새벽 출근을 위해서는 눈을 감고 자야 한다. 직장인의 비애.
일터는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