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커피나 다른 음료와 다르게 보이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고 우려낼 도구가 필요하다. 주변에 널린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쉽게 보이차를 구할 수 없다. 구한다고 한들 좋은 보이차 일리 만무하다.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보이차를 마시는 것은 아직까지 특별하다. 보이차고나 티백이 나왔다고는 하나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처음으로 보이차를 접했던 때가 2007년 가을쯤으로 기억한다. 직장엘 다니면서 직원 연수라는 걸 갔었다. 바로 말로만 듣던 ‘홍콩’이었다. 거의 4시간을 꼬박 좁은 비행기에서 벌서는 듯 쪼그리고 앉아 갔던 기억은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던 내게 ‘아름다운 고통’쯤으로 기억되곤 한다. 그때 만났던 차가 보이차였다. 어느 식당에 가던 물 대신 보이차가 나왔다. ‘보리차’도 아니고 ‘보이차’인 것이다. 물맛이 입맛에 맞지 않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보이차란다. ‘보리차’라고요? 아니 ‘보이차’ 요. 보이차를 보리차로 알아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맴돌아 그럴 때마다 옅은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우연히 처음 만난 보이차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본격적인 연을 맺게 되었다. 차마다 향과 맛이 다르고 어떻게 우려내느냐에 따라 색도 다르다. 어쨌든 마시다 보니 속이 편안해져 얼굴색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이니 이보다 좋은 증거가 없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보이차와 관련된 책과 서점에서 마주쳤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읽는 내내 너무 지루했다. 차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읽기에는 실은 너무 방대하고 어려웠다. 호기심으로 호기롭게 나섰지만 마지막엔 포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고 보이차를 아는 것에 개의치 않고 마시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차에 익숙지 않은 몸이 점점 차에 익숙해져 가듯이 책을 다 읽어갈 무렵에는 책에 익숙해져 보이차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덧 해소한 듯하다.
중국에서 차가 갖는 의미, 홍콩에서 마셨던 보이차가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갔는지, 어떻게 인류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는지 등등. 따지고 보면 중국의 역사는 차의 역사라고 할만하다. 보이차의 역사를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커피의 역사>라는 책이 떠오른다.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의 대상이었던 커피가 수많은 부침을 겪으며 변화 발전하였듯이 차 또한 운송과 보관이라는 유통의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많이 닮았다.
보이차는 돈이 된다. 그러나 때론 목숨을 내놓을 만큼 간절하게 차를 지키려 했던 수많은 마방과 험한 산자락을 쉼 없이 오르며 찻잎을 땄을 윈난성의 소수민족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오히려 돈이 아니라 차 그 자체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신성시하며 차를 나와 동일시하여 인격화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차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사와 세계사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차가 수많은 기간 부침을 겪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는 중국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만큼 차는 중국인들과는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도 이제는 보이차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특히, 주변 지인들에게 보이차를 마셔 보라며 권하기도 한다. 차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유익하다.